“의미 있는 상 아버님 영전에 드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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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상 아버님 영전에 드리고 싶어”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0.11.25 14:00
  • 호수 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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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도대상 수상한 배 선 환 울산교육청 장학관

‘당신은 참 스승의 길을 걷는 이 시대에 존경받아야 할 교육자입니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한국사도대상(師道大賞)! 남해출신 교육자 중에 올해(제9회) 한국사도대상을 수상한 사람이 있다. 울산광역시교육청 교육과정운영과 교육과정팀장 겸 학력증진팀장을 맡고 있는 배선환(57) 장학관이다. 지난 22일 그를 찾아가 만나보았다.<편집자 주>

울산광역시교육청 4층 교육과정운영과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아! 저 분이구나’하고 단박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배선환 장학관은 체격과 용모가 빼어났다.

“먼 거리를 귀한 발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생들 덕분에 고향신문에 인터뷰까지 하게 되는군요”라면서 기자를 맞이한 그는 자리를 옮겨 앉자마자 “쑥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고 송구스럽다”는 말로 수상소감을 표현했다. 온 몸에서 풍겨 나오는 겸손함이었다.

“창선이 고향입니다. 창선초교 44회 졸업생(53년생)이며 중고등학교를 다 창선에서 마쳤습니다. 고향이 남해 창선이라는 마음가짐, 그리고 제 선친께서 교육자셨다는 마음가짐이 제게 힘을 주었나봅니다.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의미 있는 상을 아버님 영전에 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선친은 창선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더 적을 정도로 평생을 교직자로 사셨던, 창선사람들이 ‘배 교장’으로 부르는 고(故) 배순탁(裵淳鐸) 전 창선초교 교장이다. 배 교장은 지난달 3일 83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두어달만 더 사셨어도 아들이 사도대상을 받는 장면을 보셨을 것이다. 교육자의 아들로서는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사도대상은 전국 지자체별로 조직된 퇴직교원들의 모임인 사단법인 한국교육삼락회총연합회(회장 김하준, 이하 삼락회)가 지난 2002년 제정한 상이다. 사도대상은 매년 전국 16개 광역시도별로 초중등으로 나눠 1인씩 32인에게만 수여한다. 원로교육자가 후배교육자에게 ‘사도’라는 영예를 얹어 수여하는 상인만큼 그 의미를 다른 어떤 상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는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생물전공, 학군장교)를 나와 지난 1981년 거제 지세포중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학업을 계속 하고 싶었던 그는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부산에 가까운 김해로 이근을 희망했지만 김해는 경합이 심했던 반면 당시 경남과 한 구역이던 1983년 울산의 학성여고가 개교함에 따라 개교멤버로써 그곳에 배정받았다. 1985년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3년 만에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울산시내 인문계 고교의 생물교사로 죽 일 해오다 2004년 교감으로 승진하면서 효정고교와 울산여고의 교감을 지냈다. 지난 9월 1일 장학관으로 승진하면서 교육감으로부터 울산시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부름을 받았다.

그의 사도대상 심사 자료를 보면 ‘자기전공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살신성인의 자세로 제자를 지도하고 독창적으로 교육과정을 개발ㆍ적용하고, 학교를 바꾸고 또 사회에 봉사하는 모습이 생생해야 한다’는 기준에 어긋남이 없다. 그는 거의 매년 수업연구대회, 전국과학전람회를 휩쓴 기록이 수두룩할 뿐 아니라 교감, 교장 승진연수 때도 1등급 차지는 당연 그의 몫이었다.

그가 기자를 맞이하면서 “동생들 덕분에”라고 말한 그 동생들은 바로 한국산업은행진주지점장인 배재환(53) 씨, 농협중앙회 상호금융팀장인 배전환(50) 씨, 여동생 배청아(47) 부산해운대관광고교 교사다.

“4남매 중 둘은 교직, 둘은 금융기관에 일하는데 나는 별로 해주는 게 없는데 동생들이 끔찍하게 나를 챙겨줘서 미안키도 고맙기도 합니다. 시상식에 꽃다발도 들고 오고 고향신문에 축하광고까지 내고…”하면서 동생들을 칭찬했다. “동생 재환이가 표시내지 않고 병석의 아버님에게 극진한 효를 다했다는 기사를 남해시대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내가 못한 효까지 다한 재환이 동생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부모님이 자식농사도 잘 지은 셈이죠”

바깥까지 나와 배웅하는 그는 “바빠서 저녁대접도 못하고 미안해서 어쩌죠”하면서 “고향에 가면 꼭 한번 신문사를 찾아가겠다”고 약속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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