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하동, 구례의 섬진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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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하동, 구례의 섬진강 이야기
  • 장 현 재 남해초교 교사
  • 승인 2010.12.09 17:01
  • 호수 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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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하천문학상 당선작(일반부 우수상) - 산문(수필)

팔월 말부터 열흘 동안 비가 내렸다. 가을장마라 하는데 햇빛을 보지 못한 우울증이 한계를 저울질한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는 막지 못하는 법! 밤부터 회색빛 구름장이 마른 논처럼 갈라지고 별빛 한두어개 고개를 내밀더니, 아침부터 까슬까슬한 바람이 구름을 쓸어낸다. 앞 건물에 막혀 답답하지만 바람은 파란 물감을 풀어내며 얼굴을 감싼다. 여름 닦고 가을 바라기. 모든 것을 시간의 흐름에 맡겨보기로 한다.

일상의 섬을 벗어난다. 살갗을 스치는 서늘함이 습도와 불쾌지수의 상관관계를 알게 한다. 아직 단풍철은 이른데 도로변 벚나무 잎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지난봄의 화사한 추억을 붉음으로 팔랑인다. 아마 옷깃을 세울 즈음이면 고치를 만들 시점이 가까울수록 투명하게 변화는 누에처럼 나목으로 남을 것이다.

들녘은 지난여름의 성장이 가을 색으로 익어가고 있다. 피사리를 당하지 않은 적자생존의 원칙을 깨달은 멀대같은 피는 성숙을 거듭해 씨앗 퍼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 농부에게 발각되면 그날로 뽑혀 갈무리가 된다는 것을 유전자는 터득한 것이다.

지리산 치맛자락의 끝 전도를 지나 한굽이를 돈다. 구부러진 색소폰 하단부의 섬진강이 옷고름을 푼다. 지리산을 돌아 흐른 곰삭은 군청색 물의 행렬은 남해로 향하고 있다. 아직 때가 아닌듯 재첩잡이 배들은 강가에 닻을 내렸고 붙박이 갈대만 지난 폭우로 불어난 물의 흔적을 황톳빛 문신으로 새기고 있다.

목도를 지나자 강 가장자리 야트막한 산언덕 자락에 따개비 같은 집 몇채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의 정취를 불러온다. 저 집 흙마당에서 동무들과 소꿉놀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흙모래로 밥도 짓고 풀각시 시집도 보내고……. 사금파리같은 동심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하동은 배가 불룩하게 나온 아귀처럼 구비 흐르는 섬진강에 싸여 백두대간 끝 지리산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송림을 스치는 바람은 무수한 사연을 실타래처럼 풀어내며 물빛, 산빛을 감고 있다.

읍내를 벗어나는 길목에 철교가 보인다. 전라선과 경부선을 만나며 순환하는 경전선이다. 날로 발달하는 도로 교통으로 운행 횟수도 단축되고, 객차도 무궁화호로 대체됐다는 시골장꾼의 푸념이 플랫폼에 흩어진다. 시간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싶다.

하동읍이 멀어지자 길 양쪽에 형성된 구릉지대에 종이 봉지를 매단 배밭이 즐비하다. 침식과 퇴적을 반복한 사질양토의 토질은 수분을 좋아하는 배의 생육에 최적조건이라 한다. 지난봄 이곳을 지날 때 안개꽃처럼 펼쳐진 배꽃들은 한기에 떨고 있었다. 그때 일찍 꽃을 피운 조생종 원황배는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라는 섬진강 따라 하동 구례 간 19번 국도. 햇볕은 들녘에 쏟아져 가을색으로 부서진다.

평사리 공원 위쪽으로 천석꾼 만석꾼이 가졌을 들판이 품을 벌린다. 늦봄 분홍빛 자운영 카펫에서 여름 지나 가을로 가는 길목의 들판은 황금빛 기다림을 모으고 있다. 소설 토지 속의 길상과 서희를 닮은 소나무 두그루가 언제나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서있다. 쉬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현대인의 풋사랑을 경계하는 것 같다.

가을의 서걱거림이 토지 세트장 초가지붕에서 묻어나고 있다. 물레방아는 북을 치고 수수는 바이올린을 켜고, 화답이라도 하는 듯 조롱박, 수세미는 리듬을 담아 타악기가 된다. 높아만 가는 하늘! 그 한 귀퉁이 구름 실 한 올 잡아당기면 파란 물이 와르르 떨어질 것 같다.

구례로 길을 잡는다. 강폭은 좁아지고 물결은 요동한다. 그 모습에 걸맞게 래프팅이란 또 다른 여가문화를 즐기는 곳을 지나친다. 강을 낀 산기슭에 이방인처럼 자꾸만 들어서는 모텔과 찻집이 비키니 차림으로 시내를 외출 나온 것 같다.

굽이진 섬진강이 조금 멀어지자 구례군 간전면이 눈에 들어온다. 석주관찰의사묘, 운조루를 지난다. 운조루는 조선시대 99칸의 집으로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다. 기둥이나 서까래를 보면 당대의 세와 재력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잡는 것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자리에 한옥의 멋스러움과 고풍을 더하며 사계절과 조화를 이루어 숨 쉬는 선인들의 지혜이다.

구례는 교통의 요지며 산 맛, 물 맛 남도 음식의 맛깔스러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가끔 들리는 음식점에 들어선다. 들깨를 많이 쓰는 남도 음식은 경상도의 솔직 담백함 보다는 감질나는 맛이다. 그 구미의 끝은 장아찌, 산채(山菜) 등 밑반찬 등속을 싸 가고 싶은 충동을 불러낸다.

마당 가운데로 나선다. 지난 팔월의 불볕더위를 뒤로 주먹만하게 달린 푸른 감들은 볼이 밝으며 굵어지고 있다. 떨어진 풋감을 보자 먹을거리가 귀했던 시절 우려먹었던 기억의 창고를 열게 한다. 젊은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뒤뜰을 정리하던 할아버지만 흙을 털어 장독대 난간 위에 올려놓는다.

화엄사 계곡의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계류가 귀를 먹게 한다. 노고단 줄기로 둘러싸인 곳에 터를 잡은 화엄사는 연잎에 둘러싸인 꽃술 자리에 앉은 것 같다.

평소 주말이면 사람들로 빼곡했던 곳. 오늘은 바람결에 풍경소리만 경내 이곳저곳을 훑어 내린다. 그 부딪힘은 석간수에 녹아 수정처럼 빛나며 무지개가 된다.

하늘은 백일홍 꽃봉오리를 열고 구름을 한 붓 한 붓 풀어낸다. 각황전 모퉁이 기둥에 기댄다. 이마를 스치는 솔바람과 빛바랜 단청이 암시하는 긴 시간. 짧은 기다림에도 인내 못하는 현대의 내면을 들여 보게 한다. 느긋하면 불안하고 손전화가 없으면 허전해 하는 문자메시지에 쫓기는 일상들이 정지된다.

각황전 남서쪽을 돌아 4사자 석탑으로 가는 계단. 시누대 숲 사이로 구례들을 휘감는 섬진강이 투영되고 하늘, 바람, 소나무, 햇살의 보시가 어머니 손끝처럼 지친 마음을 쓰다듬는다. 석탑과 마주한 석등. 가랑잎처럼 내려앉은 천 년의 세월. 바라만 보는 모자(母子)의 정이 화엄이 됐을까? 탑전에 쏟아지는 그림자가 가을볕을 쓸고 있다.

남으로 돌아오는 길, 올라올 때 빠뜨린 반대편을 보게 된다. 강의 형태에 따라 생겨난 길. 그 길을 따라 수많은 사연은 섬진강으로 모여들었을 것이다. 물살의 흐름이 빨라지는가 하면 내리막길이다. 강의 흐름에 순응한 세상이야기들이 소곤거리기도 하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며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강과 길 사이 충적지의 녹차 밭이 참빗으로 곱게 머리를 빗어 쪽진 모양새다. 저 녹차를 볶아 산 공기에 바래어 심산유곡에서 흘러나온 물 길어 달여 깊은 밤 솔바람 소리를 친구 삼는다면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라남도를 뒤로 경상남도의 초입인 화개장터에 잠시 머문다. 나물이며 약초, 참게, 은어 등 지리산과 섬진강의 풍족함이 곳곳에 넘치고 있다. 이 산과 이 강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지 그 베풂을 실감케 한다.

유약의 번쩍임이 현란한 옹기점이 눈에 띈다. 독, 항아리를 파는 곳이지만 변화에 걸맞게 도자기를 비롯한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먹고살기에 급급한 시절 스테인리스 그릇이 대접을 받았었다. 설거지통으로 던져도 부부싸움으로 상을 엎어도 깨질 염려가 없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 시절을 뒤로 식탁은 도자기로 바뀌었지만, 옹기는 여전히 생활의 한 귀퉁이에 든든한 후원자이다.

장독뚜껑 모양의 함지와 커다란 풍경을 하나 산다. 바람 한 줄기 드나들기 어려운 대문간에 돌확을 대신해 연꽃 한 포기 심어 잠깐 스치는 맑은 바람소리나 들어볼까 싶어서다.

하오의 하늘은 더 파랗기만 하다. 물 흐름은 느려지고 강폭은 넓어져 은빛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파란 하늘에 눈부신 넓은 백사장에 발을 디딘다. 불어난 물로 잠시나마 속살을 감추고 있다가 드러난 모래밭은 물 흐름을 그대로 새기고 있다. 솟아오르고 들어간 모래톱이 평탄치 않은 삶을 말하는 것 같다. 모래의 성긴 감촉이 긴 몸살을 앓고 돋은 혓바늘처럼 발밑에 다가온다.

강 건너 대숲은 산그늘에 잠기고 백로 한 마리가 날개를 접어 외다리로 선다. 산에 기대어 물에 씻기고 바람 냄새 마시며 살아야 하는 게 세상살이다. 산은 품었고 강은 흘렀고 길은 만들어졌다. 그 사연들은 한 알 한 알 쌓여 섬진강 하류 망덕 포구로 이어진다.

소금기 묻어나는 남해의 일상들이 하동 구례의 강바람 골바람에 풀풀 날린다. 육지는 바다를 바다는 육지를 동경하는 게 그리움의 윤회이다. 하지만, 그 중심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이다. 가끔은 다른 지역의 바람도 그리워할 일이지만 제일 단 내 나는 바람은 지금 마시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의 바람이다.

오늘밤 별들은 유난히 크다. 별빛은 풀벌레 소리에 화음을 더한다. 한줄기 스치는 바람은 슬래브집 처마 끝에 자리를 잡은 풍경의 얇은 자지러짐을 더하고 은하수를 따라 별빛 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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