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 천탑의 성지, 운주사 답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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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 천탑의 성지, 운주사 답사를 다녀와서…
  • 남해타임즈
  • 승인 2011.03.17 18:03
  • 호수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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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봉 자 (남해문화사랑회)


채 펴지지도 않은 햇살아래 실내 체육관 앞이 부산하다.

남편이랑 아이들 챙겨놓고 치장하느라 아침이 무척이나 분주했을 우리 남해 문화사랑회 회원 서른명 남짓은, 그래도 오늘 하루의 기대로 화사하고 들뜬 얼굴들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남해에 미친 여자 몇명을 비롯해, 모두 남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 들로, 보물섬을 대한민국의 관광수도로 자리매김 시키기 위해 동분서주 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제1남해 홍보미, 알리미들이 전남 화순을 선진답사지로 정하고 사적 410호로 지정된 청동기 시대의 대표 무덤군인 고인돌 유적지와 정암 조광조 선생의 유배지, 천불 천탑의 성지로 불리는 운주사 등을 돌아 볼 계획이다.

차가 출발하고 숨고르기를 마친 회원들이 인사를 시작한다.
“인격을 키우는 사람이 되자”는 회장님의 인사에 이어 “물건을 살까 말까 망설여 질 때는 사지 말고, 여행을 갈까 말까 망설여 질 때는 과감히 떠나라”는, 또 늙지 않는 비법으로 ‘사랑하는 것’과 ‘여행을 하는 것’이 있다는 등등의 문화사랑회 회원들다운 말들이다.

인용하는 말들의 상당수가 한비야의 얘기들이고 보면 더욱, 우리는 여행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들인가 보다.

요즘 들어 내가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 한비야다.
세계의 오지를 돌며 그 곳 사람들의 생활을 엿 볼 수 있게 해주고, 여행을 위해서나 미래를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하는 그 확실함을 닮고 싶기 때문에.

누군가는 ‘일상 탈출의 행복함에 젖기 위해’, 또는 ‘삶에서 복잡해진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 떠난다고들 한다.
또 어떤이는 ‘머리속에서 지워온 것들을 정리해 다시 보듬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어쩌면 별 기대 없이 갔던 여행지에서, 인생의 지표가 될 그 무엇을 찾을 수도 있고, 의미 없이 스쳐 지날 수도 있는 어떤 이와의 만남에서,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필연 같은 것을 발견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우리네 인생사 자체가 잠시 다녀 갈 여행이지 않은가.

각자의 생각들, 정리해야 할 마음들을 하나씩 털어내며 11시가 가까워지고, 고인돌(지석묘)유적지 안내소에서 양해숙 전남관광 해설사님을 만나면서 우리 답사의 본론이 시작된다.

유럽·북아메리카·지중해 연안·아시아 등 거의 세계적으로 분포돼 있는 지석묘는 지역마다 그 형태가 조금씩 다르며 아시아에서는 중국·일본·우리나라 등에 분포한다.

우리나라 특히, 전남지역(1만9천여기)이 세계적으로 가장 밀집 분포된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화순의 지석묘군은 대부분이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고개의 양 계곡 동쪽 산기슭을 따라 군집, 분포 돼 있는데 그 특징은 우선 숫자의 방대함, 초대형의 크기, 地上石槨形, 바둑판 형태의 基般式, 받침돌이 보이지 않는 無支石形 등 다양한 형식과, 축조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이 함께 존재해 기원·성격·동북아 고인돌의 변천사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비교적 최근(1996년)에 발견됐고, 자연 상태의 산림 속에 위치해 보존상태가 양호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점심으로 짱둥어탕을 맛있게 먹고 정암 조광조 선생의 유배지로 향한다.

성리학을 정치와 교화의 근본으로 삼아, 고대 중국 3대(하·은·주)의 왕도 정치를 이상으로 하늘의 뜻이 실현된 이상사회를 현실에서 건설하는 것이 정암의 뜻이었다.

왕에게 성현을 본받아 수양에 힘 쓸 것을 거의 강압적으로 강조하고, 개혁을 저돌적이고 급진적으로 추진하며 기존 훈구세력의 부패와 비리를 공격해 판을 뒤집을 기회만 엿보던 훈구파 공신들에게 기묘사화로 꺾여야 했다.

그의 이상이 비타협적인 방법으로 먹고 먹히는 정치판에서 잘릴 수밖에 없는 빌미를 제공했다면, 기득권 세력이 저절로 물러남은 결코 없다는 말 또한 새겨봐야 함일까.

줄어들 줄 모르는 해설사의 화순자랑과 귀를 어지럽히는 정화되지 않은 사투리는, 우리에게 생각해 봐야 할 숙제를 남기며 마지막 답사지인 운주사로 향한다.

나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설에 의거 ‘배’지형인 이곳에 돛대와 사공을 상징하는 천불 천탑을 세웠다고 하나 문헌상 사료에는 기록이 없어 '신증동국여지승람 능성현조'의 기록으로 짐작 할 뿐이다.

현재 석탑 21기 석불 93구가 보존돼 있다고 하는데 그 조각 수법이 투박하고 정교하지 못하며, 고려 중기를 조성연대로 보는데 오랜 기간을 두고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9층 석탑, 원형 다층 석탑, 운주사 석조 불감 등의 보물과, 도선국사가 하루 낮 하루 밤 사이에 천불 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려 했으나, 공사에 싫증난 동자승의 꼬끼오 소리로 하늘에서 내려온 석수장이들이 돌아가 버려, 오늘날까지 누워있는 대형 와불이 있다.

와불이 일어나는 날 이곳이 서울이 된다는 말을 뒤로 하고, 오늘 우리 답사의 일정을 마무리 하며 남해로 향한다.    

사진글-남해문화사랑회 회원 서른명은 전남 화순으로 선진답사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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