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밭에 반한 대구사나이, 박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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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밭에 반한 대구사나이, 박필우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1.03.27 08:45
  • 호수 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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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 만나는 남해愛인의 주인공은 물리적 고향이 남해는 아니다. 하지만 ‘남해애인’은 남해를 제 태어난 고향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욱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오랜 시간 살고 있는 자유기고가 박필우(52·대구 남구) 씨다. 기행수필집인 ‘사찰기행(가제)’을 준비하고 있는 그가 가장 사랑하고 있는 곳은 남해 용문사. 용문사의 매화와 부도밭을 만나러 온 그와 그의 글을 만나본다. <편집자주>


  용문사 부도밭은 공기가 달다


   어설픈 시간 속에 우연히 맛본 맛있는 나들이 길이다.
인생에 있어 계획대로만 된다면 별 재미가 없을 것인데 자투리 시간에 문득 생각난 곳이 이곳 용문사 부도밭이니, 좌충우돌이 여전한 인생의 행복이다.

전날 비가 내려 촉촉한 공간이 아련한 애수의 마음을 품고 오르는 내 마음 같다. 멀리 부도밭이 보일 때쯤 그리움으로 설레고, 한 순간 공기가 달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홀로 독차지 할 수 있다는 것은 나만의 유려한 자유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며, 어떠한 고독도 내 속에서 녹여내고, 또 드러내 놓아도 거리낌 없는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는 희망이 그것이다.
고독한 대상을 만나면 나 또한 고독해지듯이, 이끼 품은 부도를 손끝으로 감촉을 느끼면 한동안 적적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사색에 잠긴다.


어떤 고승의 무덤일까?
이승과 저승의 인연에 억겁의 사연이 묻어있다고 하지만 단 한번의 삶으로도 충분하니 그만 인연의 끈을 놓아버리고 질량도 부피도 없는 단절과 무의 세계였으면 좋겠다.

이승의 인연을 기억하며 과연 천국에 간들 마냥 행복해할 수는 있었을까?
반대로 기억이 없다면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을 것인데 누구인들 또 어떠할 것인가.

그렇다고 기억을 잃어버렸다 해서 내가 아니라고 강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영원한 숙제하나가 더 쌓이고 말았다.

그렇게 애써 털어내니 유난히 작은 부도가 눈에 띈다.
연꽃 봉우리가 채 피기도 전에 연잎이 아래로 내려와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데 파릇한 이끼의 두께가 군데군데 쌓여있다. 그것은 속에 갈라진 상처를 감추려는 자연과 부도의 노력이었다.

어린 시절 보드라운 생살에 난 상처를 엄마에게 들킬까 두려워 감추기 급급하던 시절의 마음과 닮아있다.
집에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애물단지 아들놈은 자신으로 인해 또 하나의 걱정꺼리를 만들어 드릴 수 없다는 속 깊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홀로 외로움을 삭이며 엄마주위를 서성였었다.

팔각원당형 부도아랫돌에 각각의 표정을 한 얼굴들이 있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나를 보며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먹이던 우리 누님 얼굴도 있었다.
이것이 내가 유난히 용문사 부도밭을 찾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2011. 3. 22 박필우 씀


     벗과 이야기 … 남해는 잘익은 과일같아
 “얼마나 이 부도밭이 오고 싶었나 몰라” 용문사를 향하던 그의 걸음은 가빠지기 시작했다. 
       매화필 무렵 꼭 봐야지 마음먹었던터라 비온 뒤의 흙의 질감마저도 그에겐 부드러운 반김이었다.

이름을 남기지 않은 스님들의 공동묘지같은 곳인 부도밭에서 그는 ‘열광의 정점이 고요’임을 느낄 수 있어 숙연해진다고 했다.

부도아랫돌의 다양한 얼굴문양을 바라보며 “내가 웃으면서 봐야 웃는다”며 제일 이쁜 놈이 있었다는 농을 했다.

첫 저작이 될 ‘사찰기행’을 퇴고하는 중인 그는 원래 광고디자이너였다.
그런 그가 여행과 글쓰기를 병행하기 시작한 건 15년 전. 여행을 하고부터 매해 거의 빠지지 않고 남해를 내려오게 된 그는 아직도 처음 남해땅을 밟았던 열아홉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열아홉에 처음 남해를 만났죠. 섬진강 따라 벚꽃따라 오다가 내친김에 남해까지 내려왔는데 당시 남해대교의 도도함은 아직도 생생해요”

산이 나오다가 어느 순간 불쑥 바다가 나타나는 게 남해만의 매력이라는 그는, 이러한 남해의 매력이 마늘밭끝의 방파제에서 마셨던 막걸리의 맛과 닮았다고 말한다.

그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남해자랑은 바로 남해의 벗이다.
길을 가다보면 어김없이 마주치는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나를 나답게 봐주는’ 남해에서 반겨주는 벗이 있어 자꾸만 오고 싶어진다고.
“민박집 마당에서 듣는 삶의 이야기부터 서포 김만중의 유배이야기, 이순신의 충이 서린 노량에다가 민초들의 억척함이 배인 다랭이마을까지 남해 곳곳은 이야기 천지에요”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는 신명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걸어서 남해 곳곳을 모두 답사해 ‘남해만’을 담은 책 한권을 꼭 써내고 싶다는 그의 소망에 나까지 흐뭇한 미소가 번진 까닭은.

남해를 들르면 용문사만큼은 절대 빠뜨리지 않는다는 그에게 왜냐고 물었더니 “누굴 사랑해 본적 있어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왜 사랑했어요? 모르죠? 바로 그거에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웅전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돌아온 그의 답. “높지도 낮지도 않은 이 속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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