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암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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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암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1.04.01 11:52
  • 호수 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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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보리암 주지 능원(能源)스님


隨處作主 立處皆眞 
수처작주 입처개진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있는 곳마다 참되게 하라.

-‘임제록’에 실린 임제 의현(臨濟義玄)의 설법. 능원스님이 매일 새로이 깨닫는 법문이다.


주지이기 이전에 남해군민의 한사람으로서 배고픔과 가난으로 배움을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스님은 안팎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열린 사찰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보리암은 언제나 열려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군민과 더욱 자주 만나고 싶다”며 군민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남해 금산 보리암은 특별한 곳이자 친숙한 곳이다.
타지 사람들은 금산 보리암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남해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시샘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받고 있는 보리암.
이곳은 신라시대 원효가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곳이자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 해 왕의 위업을 이룬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유서 못지않은 중요한 매력은 보리암의 관음보살이 주는 친숙함일 것이다.
우리 삶과 가장 친숙한 관음보살. 전국 3대 관음성지 명당으로 불리는 보리암을 찾았다.
유대와 실천의 끈을 이어받은 주지, 능원스님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향했다. <편집자주>


의심하지 않아야 이루어진다

능원스님은 지난해 말 금산 보리암의 주지가 됐다.
보리암을 찾은 지난 28일은 보살들로 발디딜틈이 없던 음력 24일 관음재일이었다.
사시기도(9시~11시 사이기도)와 함께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다. 불자들과 옛 스님들의 수행처를 찾아 중국을 다녀온 이야기였다.

“옛날 스님들이 수행한 곳은 작은 동굴로 너무나 좁고 허름했습니다.
오늘날의 기도 공간은 지나치게 편리위주로 바뀐 듯합니다.
올라오는 길들은 모두 포장이 됐고, 크고 새롭게 건물을 복원ㆍ단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와 수행은 어떻습니까”

능원 스님의 목소리는 차분함 속에 힘이 있었다.
“편안함만큼 우리네 기도와 수행은 더 부지런해졌을까요.
관세음보살 속에 진리가 있고 진리를 깨닫는 순간의 세계는 신비로움 그 자체입니다.
이렇듯 ‘신비롭다’라는 것은 생각이나 한치의 계산이 끼어들어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의심하는 바 없이 생각과 계산을 지운 채 비로소 관세음보살에 온전히 맡기고 정진할 때, 모든 것이 이뤄집니다”

생의 가장 순수한 시절

스님을 만나면 피해야 할 세가지 질문이 있다고 한다.
나이와 고향 그리고 출가한 까닭. 하지만 그러한 물음들이 또한 가장 궁금한 것이기도 한 게 속인의 욕심일 것이다.

능원 스님은 21살에 출가했다.
“사실 출가했을 당시는 어쩌면 생에 있어 가장 순수한 시절일 것이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어느 정도의 과장이 섞여지는 게 또한 출가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미 횟수로 27년 전의 이야기를 하기란 쉽지는 않다”고 했다.
이어 “공부가 하고 싶어 출가를 결심하게 됐다”는 속내를 터놓았다.

어려운 형편에 공부를 계속하고 모두들 꿈꿔보는 대학을 바라보기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고. 그렇게 스님은 출가해 동국대 불교대학원을 지나 군법사 생활을 거쳤다.
이후 10여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백송사 등 선방 생활을 통해 참선과 수련을 이어갔다.
진주 보광사 주지를 거쳐 금산 보리암까지 관세음보살을 한결같이 되뇌던 시간들이었다.

가늠되지 않는 스님의 시간을 돌아보니, 그 순수한 시절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건 어쩌면 그 시간에 대한 배반이자 부정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과 함께해 온 보리암, 더욱 가까이

오랜 시간속에서 깊은 교감을 나눠온 불교는 어느덧 우리네 삶 속에도 크고 작은 나눔으로 자리 잡았다. 자비와 복덕을 찾기 위해 저마다 오른 보리암에는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쌀을 모았다.
능원 스님은 이러한 불자들의 마음이 담긴 쌀이 100가마니가 모였다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육군 39사단 남해대대와 자매결연식을 맺는 것을 시작으로 지역민과 지역단체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실천하고 있는 보리암을 볼 수 있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장시간 걷는 것이 힘든 불자를 위해 무료로 보리암버스를 하루 서너회 시간을 정해 운행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이나 지역과의 상생을 위해서 상주쪽에서 내려 금산을 걸어 올라오는 게 좋다”고 재차 강조한다고.

매년 보리암에서 해오고 있는 지역장학사업을 더욱 넓혀 나가고 이와 함께 “아이들을 위한 공간만 확보된다면 공부방을 맡아 소외된 계층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대로 운영해보고 싶다”고 했다.

주지이기 이전에 남해군민의 한사람으로서 배고픔과 가난으로 배움을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스님은 안팎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열린 사찰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보리암은 언제나 열려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군민과 더욱 자주 만나고 싶다”며 군민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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