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남해의 연인 문인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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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남해의 연인 문인 박현국
  • 남해타임즈
  • 승인 2011.04.10 17:39
  • 호수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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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기의 남해이야기 18 -시인ㆍ본지컬럼라스트

  소담 박현국 선생은(1935. 5. 4∼2009. 1. 8) 남면 석교리 농가에서 1남 4녀중 셋째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잘한 소년으로 한학과 불교교리에도 깊은 분이었다.

  문학 선배이신 소담 박현국 선생의 수필집 ‘고향의 봄’, ‘우리동네 징소리’, ‘달빛이 흐르는 강’, ‘빛이 머무는 자리’, ‘강물은 남해로 흐른다’, 박현국 서간집 ‘화전별곡’을 읽어 보면서 사향의 정이 깊이 녹아 있음을 알았고 그리고 남해사랑의 그리움이 너무나도 강하게 스며있는걸 발견했다.

  몇 해 전 재경남해향우회가 고향 2세들에게 남해고향체험학습을 실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 2세들이 ‘우리동네 징소리’ 박현국 선생의 수필집을 읽게 했다면 부모사랑 남해사랑 조상존경의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박현국 선생이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낸 석교리는 금산 일월봉을 지나는 운해가 보이고 신전숲과 화개 용소리 만으로 흐르는 앵강 바다가 감돌고 있는 곳, 또 호구산 용문사의 범종소리가 여운으로 들리는 마을이다. 봄이 오면 농사철이 되기 전에 마을 사람들이 화전 꽃놀이를 하며 흥겹게 징을 울리던 마을이다. 그 징소리는 금산마루로 앵강만 바다로 울려 퍼지며 딩딩 잉잉거리는, 그 여음이 우리 동네에서 이웃동네로 이어지면서 지금도 들리는듯하다.  이 징소리는 남해사람들이 두들기고 듣던 소리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징을 치며 듣던 징소리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김매고 논 갈며 울리고 듣던 소리다.

  박현국 수상집 ‘고향의 봄’ 발간사에서 수필가이자 변호사이신 김일두님은 박현국 수필가를 일컬어 남달리 향토애를 가지고 있는 분이라 했으며 낭만적인 글도 썼지만 향우의 발전과 향토출신 자녀들의 장학문제 등 현실적으로 남해사람을 돕는 사람이라 했다.

  또 그의 글은 산사에서 터득한 철학관이 깊이 스며있다고 격찬했다. 목차를 보면 고향의 소리, 보리암에서, 향수, 잊혀져가는 것들, 남해 말씨의 정감, 3무의 고장 남해, 설날 유감 등에서 보듯이 이 수상집 한편 한편에 고향사랑과 유년의 그리움이 깊이 배여 있다.

  ‘달빛이 흐르는 강’은 제3수필집이다. 산과 강둑을 거닐며 자연과 교감하고 인생을 관조한  삶의 향기가 나는 책이다. ‘불교의 교리체계’는 유년부터 산문에서 터득한 그의 신앙적 분위기를 불교교리로 쉽게 풀이해 초보자까지도 가까이 공부할 수 있는 불교 입문서다. 불자가 아니라도 살아가는 수행의 길을 열어주는 길잡이다.

  그의 서간문집 ‘화전별곡’은 그가 직접 육필로 쓴 글과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가까운 사람끼리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이다. 

  이 전자 기계시대, 문자와 전화로 편리하게 전하고 이야기 해 버리는 오늘날 육필로 그의  정겨운 흔적을 만나보는 것은 새로움이 있다.

  소담 선생이 만난 귀한 사람들, 사업가 학자 문인 종교인 남해선후배 친족 가족들간 주고  받은 정성어린 안부와 사연이 너무나도 생생히 정 깊이 묻어나는 편지 모음집이다.

  석교 어른 김태승 님, 문인 문신수 님, 남해여성원로 정말선 님, 변호사 문인 김일두 님,  친구 김광융 님, 전 국세청장 정왕선 님, 전 국민은행장 김욱태 님, 국회부의장 박희태 님, 문인 이처기 님, 손녀 주향이의 글 외 많은 지인들의 글과 글씨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력을 보면 1960년 경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83년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제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모방 부산지점장 현대전업사대표, 영신건업대표이사, 재부남해 박씨 종친회장, 재부남해향우회 자문위원, 남해 불교신도회 명예회장, 호구산용문사신도회명예회장, 한국경영학회특별회원, 남해신문 논술고문, 남해리뷰 논술위원 등을 지냈다.

  그는 후학과 고향을 위해 봉사도 많이 한 남해의 입지적 인물이다. 그러나 나는 위에 적힌  그의 사업적 활동보다 수필로 논술로 시로 남긴 많은 그의 글이 너무나도 절절해 고향을  울리고 있음을 발견해 여기 ‘남해이야기’에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한 그분이 타계하기까지 근 3년간 와병으로 누워 투병하시다가 부산 당리동 본가에서 2009년 겨울 영민 하시었다. 살아오시면서 하루라도 고향을 잊지 않고 고향의 징소리를 울리던 박현국. 은은한 남해소리를 전하려고 몸과 마음을 바쳐 글을 남긴 그의 향심이 길이길이 전해 졌으면한다.

  석교리 돌아가는 길목에 우리 동네 징소리 박현국 문인을 기념하는 작은 돌비가 세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디잉 디잉 저 징소리! 석교리 앞 잔잔한 바다를 지나 금산 일월봉 하늘로 지금도 퍼져 울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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