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상담 등 지역사회와 소통하면서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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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상담 등 지역사회와 소통하면서 살고 싶어”
  • 김광석 기자
  • 승인 2011.08.11 16:22
  • 호수 2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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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사람 - 미국마을에 한미문화교육센터 연 박마리아 교수
)으로 연락하면 된다. 남해한미문화교육센터에 대해서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검색하면 된다.

한미문화교육센터는 미국마을과 지역사회를 잇는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으며 정신간호학 박사 박마리아 할머니와 지역주민들이 아름답게 만나는 명당이 될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미국에서 35년간 정신간호학 교수로 일하다 은퇴
에티켓, 생활영어, 유학상담, 미국식 요리교육도 가능  

남해의 명찰 호구산 용문사로 오르는 길목에 앵강만을 굽어보는 용소마을이 있다. 용소마을 명당 중의 명당에 터를 닦고 세운 미국마을! 미국마을은 이제 독일마을과 함께 둘도 없는 남해의 관광자원이 됐다. 그것이 본래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이색적인 마을이 자연스레 탐방객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겼던 것이다.  

탐방객들의 발걸음은 전원생활을 꿈꿨던 노년의 교포들을 당황하게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초인종을 눌러대고 실내를 힐끔거리는 탐방객들의 극성은 그들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그들이 꿈꿨던 모국에서의 은퇴 후 생활, 그것은 조용하면서도 폼 나는 전원생활이었으며, 아직 녹슬지 않은 전문성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면서 사는 것이었다.

힘이 넘치는 박사할머니

올해 일흔인 박마리아 박사 할머니의 경우 정말 그랬다. 꿈꿔왔던 노년의 삶은 고사하고  맘에 안 차는 것들뿐이었다. 고쳐달라고 했던 태양열시스템과 보일러는 언제 고쳐줄 지 모르고, 필요한 물건을 사고 싶어도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박마리아 박사할머니는 이런 현실을 탓하고만 있지 않았다. 마리아 할머니는 두 채의 집을 지었다. 한 채는 주택(33번, 마리아의 집), 다른 한 채는

‘남해한미문화교육센터(31번)’다. 한 채도 벅찰 텐데 왜 굳이 두 채를 지었을까?

마리아 할머니에게는 뭔가 큰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공을 살려 지역사회에 의미 있는 봉사를 하겠다’는 꿈, 그 꿈이 한미문화교육센터라는 이름의 꽃을 피우게 했던 것이다. 센터라는 명칭에서 미국의 문화를 전시하는 곳으로 생각하기 쉽겠으나 센터는 교육을 위한 건물이다.

지난 7일 오후 이곳에 귀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충북의 꽃동네복지대학교가 운영하는 조울증이나 알콜중독자 치유프로그램이 이곳에서 진행됐던 것. 꽃동네복지대가 중독자 치유프로그램을 이곳에서 진행했던 이유는 지난 2008년부터 올해 6월까지 박마리아 박사가 그 대학교의 정신간호학과 교수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맨 첫 프로그램은 박마리아 박사할머니의 강의로 시작됐다.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부터 열어주는 것이 치유프로그램의 시작인데 이 분야가 바로 마리아 할머니의 전공이었던 것이다. 마리아 할머니의 강의는 고개를 숙이고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성간이든 동성간이든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말하기 전에 서로 얼굴 쳐다보기
▲자기소개를 한 후 느낌 말하기
▲말없이 대화한 후 느낌 말하기
▲첫인상을 서로 나눈 후 긍정적인 것 말하기
▲첫인상을 서로 나눈 후 부정적인 것

말하기 등 다섯 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실내를 무겁게 짓눌렀던 처음의 어색한 분위기는 씻은 듯 사라지고 서로 웃음을 지어보이게까지 했다. 마리아할머니는 이를 조해리(JOHARI)의 창문이론에 따른 ‘창문을 여는 연습’이라고 했다.

중독자 치유프로그램 열고파

마리아 할머니가 미국으로 유학을 간 건 45년 전의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더 깊은 학문을 닦고 싶어 미국을 선택했다. 그 길이 곧 45년 동안의 재미교포로서의 삶으로 이어졌다. 마리아할머니는 정신간호학을 전공했다. 학비를 벌어가면서 이어갔던 시카고에서의 학업은 석ㆍ박사학위를 따는데 10년이나 걸리게 했고 그 10년간의 고진감래는 할머니를 시카고 데일리칼리지의 정신간호학과 교수로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1974년부터 2007년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할머니는 꼬박 35년간을 교수로 재직했다.

마리아 할머니가 남해의 미국마을로 오게 된 것은 미국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만난 경상대 박진환 교수가 연결해줬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고 있던 할머니에게 박 교수는 남해의 미국마을을 소개하면서 모국에서의 노년생활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것이 할머니가 제2의 출발이라고 말하는 미국마을 정착기가 된다. 2008년 모국으로 돌아온 마리아 할머니를 꽃동네복지대학교가 교수로 초빙하는 바람에 할머니의 미국마을 생활은 지난 6월 말에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박마리아 박사할머니는 한미문화교육센터를 지역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알리고자 한다. 이거야말로 할머니가 미국마을을 선택한 진짜 이유이고 또 많은 돈을 들여 한미문화교육센터를 지은 뜻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미국의 생활에티켓을 주제로 생활영어를 가르칠 수도 있고, 미국식건강요리를 만드는 방법도 가르칠 수 있으며, 미국유학을 준비하는 가족을 위한 미국문화, 생활환경, 생활영어 등 필요한 상담을 해줄 수도 있으며 특히 우울증이나 치매, 알콜중독 등 정신건강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모바일폰 (☎010-8999-0363)번이나 전자메일(mjpark
0242@yahoo.com)으로 연락하면 된다. 남해한미문화교육센터에 대해서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검색하면 된다.

한미문화교육센터는 미국마을과 지역사회를 잇는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으며 정신간호학 박사 박마리아 할머니와 지역주민들이 아름답게 만나는 명당이 될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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