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는 밤의 연주, 오늘도 추억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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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밤의 연주, 오늘도 추억은 흐른다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1.10.07 17:38
  • 호수 2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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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는 어둠과 자동차가 쉬어가는 극장, 그리고 추억이 머문다

<주말&남해 DRIVE>
추억속의 재회. 밤이 되면 제 모습을 감추는 도시 위로 또 다른 빛이 드러난다.
하지만 형형색색 옷을 바꿔 입어보아도 본래의 제 모습은 그대로다. 어쩌면 밤이 빚어내는 풍경은 찬란한 낮과의 추억을 소리없이 마주하는 재회가 아닐는지.
지나치는 어둠 속에서 만나는 낯선 그 모습, 하지만 미워할 수는 없다. 소리없는 밤의 연주가 들리는 그 곳, 둥근 두 바퀴의 힘을 빌려 아름다운 그 곳을 향해 달려본다. <편집자 주>

익숙함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

익숙함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

언제부터인가 자동차는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 익숙하다.
그러한 익숙함 속에 우리는 일상의 많은 부분을 구겨 담아 같이 달린다. 오늘 풀어야 할 약속과 내일 미뤄진 과제들, 별일 없이 사는 사람처럼 오늘도 달리지만, 혹시 아는가.
당신이 내달리고 있는 저 거대한 창선-삼천포 대교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당당히 대상을 차지한 녀석이라는 것을.
그것도 도로와 예술, 사진 분야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3개월간의 인터넷 공모를 통해 온 전국의 길 중에서 고르고 고른 최고의 길이라는 것을.

‘다리의 향연’이라 불리는 ‘창선-삼천포 대교’는 경남 사천시 대방동부터 남해군 창선면 대벽리를 연결하는 총 길이 3.4km의 연륙교로 총 5개의 다리가 제각기 다른 공법으로 시공돼 한려해상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국내최초의 해상복합교량이다.
각기 다른 자태와 각기 다른 불빛을 자아내는 길고 긴 다리는 마치 영화 속 다음 장면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 돼준다.

자동차도 쉬어가는 그곳, 연륙교극장

자동차도 쉬어가는 그곳, 연륙교극장

무작정 내달리는 인생만큼 허무한 것도 없으리라.
이따금 옆길로 혹은 사잇길로 때로는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가게 되는 인생이 우리네 사연많은 인생일 것이다. 그러한 사연을 조금은 어둡고 조금은 불편한 현실에서 스크린으로 만나게 해주는 곳, 그곳이 바로 몇 안 남은 자동차극장으로 알려진 연륙교극장이다.

2004년, 창선·삼천포 대교의 열림과 운명을 함께 해 온 이 극장은 2천평 부지에 가로 18미터, 세로 11미터의 초대형 스크린이 걸려 있다.
자동차가 사람처럼 대접받는 이 곳. 그래서인지 영화 관람료도 사람 수에 관계없이 차 한 대당 1만2천원이다. 둘이 가든 넷이 가든 금액에는 차이가 없지만 넷이 갈 경우 관람의 노하우는 필요하다.
즉,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잘 안보이기 때문에 자동차를 스크린 앞쪽으로 주차시키기보다 멀찌감찌 떨어뜨리고 정면주차보다 엇비슷하게 보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다.

달리다가 맥주 한잔이 그립다 싶을 때는 연륙교 극장으로 오면 된다.
극장 앞 자그마한 매점은 캐러멜 팝콘부터 오징어와 쥐포, 컵라면까지 맥주와 주전부리의 모든 것이 없는 것 빼고 다 갖춰져 있다. 저 작은 곳 어디에 숨겨놓았나 싶을만큼 금방 뚝딱하고 눈앞에 나온다.

주파수를 빌려서 쓰는 음향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게 허락된 공간만큼 공평하게 울려퍼지고, 운전하느라 경직되었던 근육들은 그들의 의자위에서 다시금 휴식과 위안을 찾는다.

순수한 순환, 그리고 싱싱한 인생

순수한 순환, 그리고 싱싱한 인생

자동차극장은 저녁장사다.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이곳은 저녁 7시에 첫회 상영이 시작된다.
새벽 한두시쯤 영화상영이 끝나고 스크린 정리를 한 뒤 자동차극장의 불이 완전히 꺼질때는 새벽 4시무렵이다. 그즈음으로 활어경매가 이뤄진다.
싱싱한 횟감을 두고 오가는 그들의 손놀림, 그 속에 싱싱한 삶이 있다.
그렇게 경매가 끝나는 오전 10시나 11시쯤에는 창선대교타운 일대에 즐비한 횟집들이 문을 연다.
24시간 경제가 돌고, 그 속의 사람들의 걸음이 돌고 도는 그곳이 창선대교타운이다.
필름을 돌리고, 횟감을 팔고, 추억을 파는 가공하지 않은 날것의 경제가 살아있는 곳이 그곳이다.

커다란 배 한척이 육지에 올라와 있어 쳐다보니 ‘남해군수협위판장 회센터’라는 이름이 걸려있다.
그 이름답게 남해군 수협이 책임지는 싱싱한 횟감들로 모든 요리가 이뤄진다.
특히 2층은 대교의 아름다운 자태와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식으로 회덮밥과 회초밥(1인분에 1만원)을 주문하면 매운탕이 같이 나온다. 또 이곳만의 메뉴는 ‘회정식’(1인분에 1만5천원)으로 약간의 회와 회덮밥을 해서 먹을 수 있게끔 야채가 나가고 매운탕도 함께 나오는 것으로 손님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횟감을 골라서 썰어달라고 해서 먹을 수도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단항 회센터가 그곳이다. 지상3층의 현대식 건물인 이곳은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을 저렴한 가격으로 직접 구입해 2층 식당에서 야채와 초장 등의 값을 지불하고 먹을 수 있다.
또 횟감이나 회초밥을 사서 자동차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먹는 맛 또한 일품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적당히 자동차 바퀴를 굴려 시끌법적한 곳에서 적당히 촌스러움을 느껴볼 수 있는 재미진 곳.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강영자 기자 nhsd@hanmail.net

필름과 함께 40여년을 보낸 남자, 김상국


<길 위에서 만난 남자>
“비 맞으면서 영화 보는 그 기분 … 최고지”
필름과 함께 40여년을 보낸 남자, 김상국

파랑새를 찾는 기분으로, 적어도 꾀꼬리 정도는 만나겠지 하는 심정으로 영화관을 찾곤 했었다.
자동차극장을 찾은 그날도 그랬을거다.
내 안에 숨어있는 다른 이야기, 미처 몰랐던 그 이야기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동차극장은 두 부부가 꾸려가고 있었다.
매표랄 것도 따로 없이 저녁 6시즈음이면 극장상영판과 펜스 등으로 자동차극장의 영역을 표시해두고 입구를 차 한 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해둔다.
그리고 자동차가 들어오면 야광봉으로 멈춰 세운 뒤 한 대당 입장료를 받고 들여보내는 구조다.
그렇게 들어간 자동차극장에서 캔맥주를 사러 들어갔을 때 막 스크린점검을 마치고 들어 온 한 아저씨가 들어온다.

필름을 만진지 40여년이 훌쩍 넘는다는 아저씨는 말로는 영업부장이라지만 이 극장의 영사기사이자 홍보와 영업을 총괄하는 등 일종의 총책임자셨다. 그 이름은 김상국.

“될만한 영화의 필름을 가지러 영화사도 찾아가고 시사회도 챙겨서 봐.
자동차극장이라면 다들 철지난 영화 틀어주는 걸로 오해하는 데 말야. 그거 아니거든.
오히려 첫타임이 저녁상영이다 보니 전국 동시개봉을 하는 영화라면 하루 먼저 상영하는 셈이야”
목소리에서 결연함까지 느껴진다.
이어서 “게다가 다른 멀티플렉스극장마냥 상영관이 7-8개 되는 게 아니라 단 하나의 스크린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하니까 한달에 영화 회전율도 많아야 3번에 불과해.
즉 흥행되는 영화면 한달내내 그 영화 하나만 틀고, 그 영화 성적이 저조해서 바꾸더라도 기껏 두세번이란 소리잖어. 그러니까 그만큼 영화 하나 선정하는 것도 정말 고심 고심한다는 거지.
즉 제일 재밌는 영화, 믿을만한 영화를 건다는 거야”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매일 늦은 귀가와 지겨울 법도 한 포스터 작업,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좋다는 아저씨는 “여기가 내 인생
의 안착지야. 영화에 관한 일이라면 뭐든 좋으니까 편안하니까. 비 맞으면서 영화보는 기분이 어떨 것 같애? 겨울에 눈 오면 또 어떻구. 정말 그런 날에는 지상낙원이 따로 없지.
여기선 모든 게 자연스럽잖아. 먹는 것부터 보는 태도까지. 그게 매력이야”

호쾌한 웃음을 남기며 필름 감으러 가야 한다며 일어서는 아저씨, 그 거친 웃음이 참 어울렸다.
오늘밤은 텅빈 스크린 위에 무엇이 채워질까 기대해보며 자동차로 다가간다.

 

강영자 기자 nhs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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