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서 더 바쁘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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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서 더 바쁘게 살고 싶어요”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3.04.04 14:19
  • 호수 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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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기타치러 왔다가 벌써 9년, 20년만에 첫 정식앨범 낸 남해가수 강현수 씨

늘 까만 선글라스에 갈색 긴 머리, 저 사람이 누구 길래 문화원 노래교실의 ‘어머니’들이 저다지도 좋아할까 궁금했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갔던 남해초 신문활용수업에서 똘똘한 산이를 알게 됐고, 그 아이가 수업 중 남해시대를 펼치다 “어, 우리 아빠다”했다. “산아, 너희 아빠가 누구시길래?” 아이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저희 아빠모르세요? 가수 강현수 씨요”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궁금했다. 가수라지만 ‘나가수’에 나오지 않고, 기타는 잘 치지만 ‘위대한 탄생’에 보이지 않는 가수. 도대체 뭘 먹고 사시나.

그것또한 궁금했다. 그런 그가 드디어 음반을 냈다. 일을 친 것이다. 이제 만날 빌미가 생겼다. 작업실이 아직 없다는 그의 소탈한 말에 남해시대신문사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때 알았다. 마흔 셋의 가수 이전에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아들을 둔, 서울서 대기업에 다니던 ‘잘 나가는 여자’를 남해에 눌러 앉힌 고집 있는 남편이자 아빠라는 것을.

그가 낸 앨범제목답게 ‘기대, 좋은 예감(expectation)’이 드는 ‘사랑이라 불러봅니다’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고향은 전남 영광이지만 공부를 잘해 서울로 전학 간 수재. 고등학교 때 어깨너머로 배운 기타는 중앙대에 입학한 후 본격적인 음악에 빠져들게 한 계기가 됐다고. 1997년부터 직업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현수씨는 명동에 있는 라이브 카페 ‘쉘부르’와 미사리에서도 활동했다. 무리하다보니 목도 상했고 휴식이 필요했다고. 그러던 중 당시 남해읍 아도니스 대표가 서울까지 와서 현수씨에게 “두달만이라도 내려와서 가게 좀 키워 달라”는 제안을 한 것이다. 당시 초등학교 동창인 동갑내기 부인은 ‘갈려면 이혼하고 가라’고 엄포를 놓았으나 남해에 내려와 많은 형ㆍ동생에게 사랑을 받았던 현수씨는 결국 아내를 설득해 네 가족 귀촌에 성공했다. 두 달 살아보자 시작한 게 어느덧 9년째. 이젠 아내가 “강씨 아저씨, 우리 계속 서울서 살았으면 그 스트레스 다 어쩔 뻔했어”말하며 더 남해를 좋아한단다.

남해가수 현수씨는 9년 전과 달리 바빠졌다. 남해문화원과 노인복지관에서 노래교실 강사, 남해여중 기타 강사에다가 저녁이면 다시 가수로 노래를 하고 종종 지역공연까지.

그는 말한다. “저 같은 음악인이 해서는 안되는 게 결혼이고, 더 안 될 일이 애를 낳는 거라고 하는데, 오히려 내 가족이 있으니 내 음악도 되는 거구나, 살아보니 느껴요” 이어서 그는 “자존심이 강한 아내였기에 꽝인 저 눈 감아주고, 과분한 두 아들로 키워 준 것 같다”며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방송심의하고 저작권 등록까지 마친 정식앨범을 두고 그는 “큰 욕심 안 부리고 지금보다 조금만 더 바빠지고 싶다”며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는 더 구체적으로 꿈을 꿀 수 있도록 돕는 선생님이, 노래교실 어머님들과는 좀 더 오래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군민들의 ‘신청곡 사연보내기’가 아닐까. 진정한 남해가수로 거듭날 수 있도록 그의 노래제목인 ‘바쳐야 한다’처럼 이젠 우리가 그에게 응원을 바쳐야 하지 않을까?

1천장 한정판으로 찍은 가수 강현수씨의 음반은 1만원이며 음반 구매를 원하는 사람은 남해시대신문사(☎863-3365)로 연락해 문의하면 된다.
강영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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