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중도를 걷는 신문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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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중도를 걷는 신문되길
  • 김종수 기자
  • 승인 2013.04.25 14:20
  • 호수 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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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착한가격의 남광이발관 정상봉 이발사

1990년대 초, 다른 이발소나 미용실보다 1~2천원 저렴한 착한가격에 읍내 중ㆍ고등학교의 많은 남학생들이 단골로 삼았던 남광이발관.

유림1동 마을회관 옆 3평 남짓한 공간에 위치했던 남광이발관엔 읍내 이발소 평균 이발비를 받아와 남는 돈을 용돈으로 활용하려는 학생들로 붐비곤 했다.

20여년이 지난 현재는 마을회관 신축 등의 이유로 길가로 이발관을 옮겨왔고, 당시 찾아오는 학생들을 위해 쌓아뒀던 소년챔프, 아이큐점프 같은 월간만화 대신 지금은 각종 신문들이 소파와 테이블을 지키고 있으며 손님은 50대 이상의 아저씨나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착한가격과 새벽 5시면 불이 켜지는 이발관, 그리고 여전히 젊어 보이는 이발소 아저씨다.

50대 중반의 모습으로 67세의 나이를 가진 정상봉 이발사는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지금의 서울미용실 자리에 있었던 남해이발관에서 일을 배웠다고 한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물을 긷고 청소를 하고 면도기 갈기에 손님 머리 감기기까지…. 그때부터 일찍 일어나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걸 보면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정상봉 이발사가 자신의 가게를 가진 건 28세 되던 1974년. 그로부터 3년 후 당시로서는 늦은 결혼을 했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하나씩 얻어 이발 하나로 시집장가를 보냈다.

그는 저렴한 요금을 고수하는 데 대해 “자식들 다 키웠는데 먹고 살만치만 벌면 되지, 내 나이에 욕심 가져서 뭐 하겠냐”면서도 “이 일에는 정년이 없는 거 하나는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일 배울 땐 먹고 살기 힘들어서 다들 서로 배우려고 줄을 섰는데 이제는 배우려는 사람도 없다”며 이발사라는 직종이 사양길에 접어든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비결을 묻자 “맨날 거울을 봐서 그런가?”라고 농담조로 운을 뗀 뒤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다 보니 이런저런 사람 다 만나는데 스트레스를 주는 대로 마음에 담아두면 그게 병이 된다며 결과적으로 스트레스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7주년을 맞은 남해시대에 대해서는 “남해시대를 꽤 오래전부터 구독하고 있는데 산악회 기사가 많은 것 빼고는 대체로 여당이나 야당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서 좋다”며 “앞으로도 중도를 지켜나가는 신문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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