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5일 후손들 모여 입남조(入南祖) 추모 춘향제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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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5일 후손들 모여 입남조(入南祖) 추모 춘향제 올려
  • 한중봉 프리랜서기자
  • 승인 2013.06.27 11:45
  • 호수 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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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남성씨 발자취를 찾아서11 성주이씨남해종친회

▲ 잘 지어진 제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읍 봉전마을에 있는 성주이씨 제각.
성주이씨(星州李氏)의 시조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 때 재상을 지낸 순유(純由)이시다.

순유께서는 고려왕조가 건국되고 조정에서 등용을 권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이름마저 극신(克臣)이라 바꾸고 성주로 유배됐는데, 이를 계기로 관향(貫鄕)을 성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주이씨는 증손(增損)까지는 실득(失得)되고 12세 장경(長경) 할아버지를 중시조로 하여 세수(世數)와 세대(世代)를 헤아리고 있다.

중시조 장경은 다섯 아들을 두었고 고려 충열왕 20년에 다섯 형제가 모두 과거(문과)에 급제해 명문대가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특히 입남조 6대조인 조년(兆年)께서는 정당문학 예문관 대제학에 임명됐으며 오늘날까지 잘 알려진 ‘다정가’와 ‘백화헌시(百花軒詩)’ 등으로 유명하다.
▲ 성주이씨 남해종친회 종원들이 지난 4월 5일 영사각에서 입남조 두 선조를 추모하는 춘향제를 모시고 수목당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있다.

성주이씨 입남조

성주이씨 입남조는 두 분이다.
 
한분은 계순(季淳)이시고 한분은 조카인 世溫(세온)이시다.
 
1456년(세조2년)에 단종복위 모의의 주역인 사육신 성산문이 계순 선조의 이모부여서 화를 모면하기 위해 출생지인 경기도 용인에서 산청군으로 옮겨 살다가 뜻을 같이하는 진양하씨의 입남조 하신(河紳), 정확(正確)과 함께 바다를 건너 남해로 오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때가 계순께서 서른 한살이시고 부인 장수황씨(長水黃氏)는 서른 살로 부부가 이거하면서 13세인 조카 세온과 함께 남해읍 차산리에 정주하다가 세온은 하동정씨(河東鄭氏)를 배필로 삼아 고현면 도마에 정착했다고 한다.

계순께서는1510년 (중조5년)에 85세로 생을 마치고 서면 유포마을 발맹산(바늘산)에 쌍분으로 모셨다가 1979년에 남해읍 평현리 중산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입남조의 조부 제(濟) 할아버지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셋째 사위로 개국공신의 자손에게 내린 음직인 충의위부사직공(忠義衛副司直公)라는 품계를 이어 받아 충의공(忠義公) 파로 부르고 있다.

세온께서는 1498년(연산4년) 58세로 생을 마치셨는데 설천면 노량리 사치산에 모셨다가 이 후 이동면 초곡리 월구산으로 이장했다.

관직은 음직인 부사직공(副司直公)으로 사직공(司直公) 파로 명명되고 있다.

성주이씨 충의공파는 남해읍 평현마을과 양지마을에 1970년대까지 100여호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으나, 오늘날에는 40여호 밖에 없으며, 부사직공파는 이동면 초양, 광두, 초곡과 삼동면 영지, 고현면 성산마을 등에 각각 20~30여호 씩 같이 살아 왔으나 지금은 이농과 인구감소 등으로 10~20여 호 정도밖에 찾아 볼 수 없다.
 
성주이씨 종친회 활동

종친회 회장
성주이씨남해군종친회는  1927년 3월 7일 종친 236명이 모여 성주이씨 화수계를 결성하고 매년 3월과 9월 17일에 유사를 정해 종친집에서 회의를 열기로 한 것에서 시작된다.
 
또한 1967년 4월 13일 청년 친목회를 조직한 것으로 보아 문중의 화합과 숭조위선(崇祖爲先) 함양에 노력해 온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종친회의 정식 발족은 1978년 봄 화수계에서 제실 건립 계획안이 가결되고, 가을 화수계에서 화수계를 남해군성주이씨종친회로 명칭을 바꿨는데 이 것이 종친회의 시작이다.

성주이씨 종친회는 종친회 재산으로 남해읍 아산리 봉전마을에 터를 마련하고, 1979년에 영사각(永思閣)과 덕후문(德厚門)을 건축했다.

▲ 이은태 종친회 사무국장
또한 1982년에 봉황재(鳳凰齋)와 유정문(由正門)을 정통 한옥으로 건축했으며, 1981년 이어리 출신 재일교표  기두(基斗)종친이 종친회관 수목당(修睦堂) 신축비 1억원을 내놔 수목당과 부속건물 2동을 짓고 회관 주변 정비를 했다.

이 건물들은 그 짜임새가 남달라 잘 짜여진 제실과 사무실로 알려져 있다.

또한 종친회에서는 매년 4월 5일을 기해 영사각과 입남조 두 분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춘향제(春享祭)를 올리고 수목당에서는 종친회 총회를 갖는다. 시제는 충의공파는 매년 음력 10월 11일에, 사직공파는 음력 10월 13일에 올리고 있다.

정치ㆍ행정ㆍ기업가로 성공한 후손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성주이씨 집안의 인물로는 남해군의회 의장을 거쳐 경남도의회 의원으로 활동 중인 재열(22세)이 있고, 행정가로는 갑준(부산광역시 부이사관) 인효(사무관), 효수, 호주(서기관) 등이 현직에 있다.
 
또한 기업인으로는 재일교포로 일본 관광업계에 활동중인 24세 상철 종친과 부산의 포천마린 대표 정수(24세). ㈜경은 대표 호일(22세)등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이 다수 있다.

아울러 학계출신 인사로는 동의대학장 충엽(24세). 흥규(23세). 은득(24세)종친이 활동 중이며 퇴직한 사람 중에도 창휴, 현재 등 다수가 활동 중에 있다.

종친회 이창휴 회장은 “우리 종친회는 1981년도에 기금 1억원으로 장학회를 설립 현재까지 중학생 57명. 고등학생 42명, 대학생 32명에게 장학금을 지금해 바른 성장에 이바지 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한옥건물이 지어진 지 30여년이 넘어 누수가 발생하는 등 보수가 시급한 실정”이라며 종친들의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자료제공 = 성주이씨남해군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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