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有錢無罪)에 파묻히는 헌법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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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有錢無罪)에 파묻히는 헌법적 가치
  • 김정화
  • 승인 2013.07.26 10:26
  • 호수 3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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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화
김정화공인중개사 대표
본지 칼럼니스트
우리 사회의 정당하지 못한 법 집행 관행은 여전히 사라지지 못하고 있다. 불법 비자금을 조성해 지하경제를 양성화 시키고 이를 통해 주가를 조작하며,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탈세를 시도하는 등 대기업 총수와 경영자가 저지른 중대 범죄나 권력자들의 사회적 해악행위에 대해서 엄격하지 못한 법적용과 사면권 등이 그 실 예이다.

돈이 있으면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가 있다. 라고 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오르내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말은 영화 홀리데이로 알려진 지강헌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1988년 10월 교도소 이송중 탈영한 지강헌 등은 가정집에 난입해 경찰과 대치하게 된다. 이들의 탈주 계기가 된 것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는 특혜를 받고, 돈 없고 권력이 없으면 중형을 받는 양형의 상대적 불평등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500만원을 훔치고 17년의 형을 받은 지강헌은 수십억원을 횡령하고도 7년의 형을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의 형량에 분노한 것이었다.

이에 지강헌은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지금의 우리 법이 이렇다. 라고 개탄하다가 일부는 사살되고 지강헌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지강헌의 말이 꼭 맞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상당히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최근 이화여대 얘기가 우리 사회에 자주 거론된다. 이화여대 법대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22살 꿈 많은 여대생 하 모양이 청부살해된 사건은 10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 7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S대 출신의 법관 사위를 맞이하고 그 사위의 불륜을 의심한 장모 윤 모씨가 자신의 추궁에 얼버무린 판사사위의 그릇된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게도 사위의 사촌동생을 지목해 1억 7천만원을 들여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한 뒤 아직 채 피지도 못한 이 여대생의 머리와 얼굴에 공기총 6발을 쏴 청부살해한 사건은 당시 우리 사회의 큰 파장을 불러왔다.

그런 이후로 우리는 그 일을 한참 잊고 지냈던 얼마 전 1,700여명의 이화여대 재학생, 졸업생 등이 옳지 못한 법 집행에 분노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모금액으로 ‘대한민국에서 더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용납되지 않기를 바라며,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하게 심판받는 그 날까지 지켜보겠습니다’는 내용으로 모 일간 신문에 광고를 게재한 모습은 이 시대 법과 사회에 대한 대중의 분모와 허탈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내용인즉 그 사건의 장본인 윤씨가 지난 2004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도 2007년 7월부터 고혈압 등 12가지 병명으로 진단서를 끊어 10차례의 형집행정지와 연장을 통해 4년 넘게 하루 200만원의 호화병실에서 생활하면서 검찰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맘대로 외출까지 해 온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형집행정지제도는 형사소송법(제471조)에 의해 형의 집행으로 인하여 현저히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가 있는 때, 연령 70세이상인 때, 잉태후 6월이상인 때, 출산후 60일을 경과하지 아니한 때 등 인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수형자에게 형의 집행을 계속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보여지는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 검사장의 허가를 얻어 검사가 행하는 권한이다.

 일반 서민은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형집행정지 제도를 부유층의 ‘합법적 탈옥’ 수단으로 윤모 씨가 악용해 왔다는 것에 대하여 돈과 권력을 가진 자 앞에 무너진 법치가 사회 정의를 송두리째 빼앗아 간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헌법의 대표적 속성은 천부적 인권인 평등한 존엄권을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이념이다. 그중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사회적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되어있다.

법 앞의 평등은 각각의 사람이 타인과 비교하여 법과 제도적 차별을 받지 않을 것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고, 국가권력은 만인의 평등원칙과 정의에 합치되도록 법과 질서를 형성할 것을 적극적으로 실행해야하는 규범이다.

헌법 앞의 평등이 사람에 따라 상대적 평등, 형식적 평등에 불과하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것이며 침통한 일인가? 법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며 그들의 정의로운 방패가 되어야 함에도, 구슬땀 흘려가며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은 법률아래 철저히 가두어 둔 채 엄혹한 법적용을 하면서도 권력 있고 돈 있는 자들에겐 관대하고 무기력한 법 집행을 보면서 이제는 제발 이런 일들에 분노하고 허탈해하는 일이 없어지고, 법이 권력과 돈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것이 어디 필자만의 생각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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