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최고의 시인, 문장가 이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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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최고의 시인, 문장가 이숭인
  • 김성철
  • 승인 2013.08.01 14:47
  • 호수 3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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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관장의 유배로 읽는 한국사 55

▲ 남해유배문학관 관장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는 호에 ‘은(隱)’자가 들어 있어 고려시대 3은이라 부른다.

같은 시대의 학자로 뜻을 같이 하던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역시 호에 ‘은(隱)’자가 들어 있어 야은 길재 대신 고려 3은으로 불리기도 한다.

1347년 태어난 이숭인은 16세에 과거에 급제한 신동으로 1375년 7월, 북원의 사신을 맞이하지 않고 이인임을 해치려 했다는 죄명으로 정몽주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29세의 나이에 고향인 경상도 성주에 귀양살이를 하게 된 이숭인은 청휘당(晴暉堂)을 세워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다. 이때 그의 대표작인 제승사(題僧舍) 등의 한시를 지었다.

산의 위 아래로 소롯길이 갈려 있고 / 송화는 비 머금어 어지러이 떨어진다.
도인이 우물 길어 띠집으로 가더니만 / 한 줄기 푸른 연기 흰 구름을 물들인다.

귀양지에서 풀려난 이숭인은 성균사성, 우사의대부를 거쳐 밀직제학이 되어 정몽주와 함께 실록을 편수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중 이색과 함께 첨서밀직사사로 원나라 남경에 가서 신정(新正)을 축하하고 돌아와 예문관제학이 되었다.

하지만 이숭인은 하륜 등과 함께 수십 년이 지난 후 일본에서 돌아온 종친 영흥군 왕환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 빌미가 되어 유배길에 오르게 된다.

왕환은 예전에 무릉도(울릉도)에 귀양간 적이 있었다. 19년 동안 생사를 알지 못하다가 아내 신씨가 남편이 일본국에 표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노(家奴)를 시켜 서너 차례 행적을 조사했다. 가노는 일본에서 자신의 이름이 환이라는 사람이 있어 함께 귀국했다. 그는 이미 행색도 변했고, 말도 잊었고, 아버지, 할아버지의 이름도, 자신이 살았던 마을도 몰랐다. 신씨의 동생 전 판사 신극공, 사돈 전 판개성부사 박천상, 전 밀직부사 박가흥, 하륜, 이숭인 등이 가짜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인인 신씨와 두 아들, 형인 중 참수와 종실 어른들이 왕환이 맞다고 말했던 것이다. 창왕은 왕환이 진짜가 아니라고 한 5명을 모두 무고죄를 주었다. 다른 4명은 모두 귀양살이를 떠났지만 이숭인은 이색의 변호로 유배형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윤소종 등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이숭인을 헐뜯었다.

결국 이숭인은 한 달도 되지 않은 1389년 10월 간관 오사충의 탄핵을 받았다. 오사충 등은 이숭인이 이인임과 임견미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 심복으로 있었고 어머니의 3년상이 끝나기도 전에 과거시험을 맞는 시관이 되었으며, 탐욕스러운 성품이라며 공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종친을 무함하여 부자, 형제, 부부의 연을 무너뜨리려다 실패하고도 명을 어기고 도망하여 숨은 불경에 대해 탄핵했다.

이숭인은 그들의 탄핵이 두려워 또다시 도망가는 바람에 또다시 잡혀 결국 경산부(경북 성주)로 유배된다.

고려 말, 시인, 학자로 겁이 많고 유약했던 이숭인의 성품을 잘 알고 있던 권근이 그를 적극 변호하여 장문의 상소를 올렸지만 허사였다. 도리어 상소문이 대사헌 조준의 심기를 건드려 이숭인의 편을 든 죄로 우봉현(황해도 금천)에 유배되었다가 경상도 영해부로 이배되었다.

판문하부사 이색 역시 “이숭인이 지금 탄핵을 당하여 귀양갔사오니 신이 감히 편히 있을 수 없으므로 맡은 일을 사면하고자 하옵니다”라며 관직에서 물러나고자 하였지만 왕은 윤허하지 않고 교지와 술을 내려 위로하기까지 하였다.

1390년 5월, 윤이와 이초의 옥사 때 유배지에서 잡혀와 이색, 이임, 우인열, 이인민, 정지, 권근, 이종학, 이귀생 등과 함께 청주옥에 수감되었다. 그 뒤 다시 사면되어 관직에 올랐으나 정몽주의 당으로 분류되어 유배객의 신세가 되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마자 고려 최고의 문장가 이숭인은 정도전의 심복 황거정(黃居正)에 의해 유배지에서 곤장을 막고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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