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흘려 유배, 사약 전해 사형된 이세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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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흘려 유배, 사약 전해 사형된 이세좌
  • 남해타임즈
  • 승인 2014.04.10 15:32
  • 호수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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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관장의 유배로 읽는 한국사 87


남해유배문학관 관장
 1503년 9월 11일, 인정전에서 양로연이 열렸다. 연산군은 의정부와 6조의 정3품 이상 신하들과 관직에서 떠나 있던 훈구대신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면서 시 한 수를 읊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보이면서 평하게 했다. 윤필상, 성준, 이극균 등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왕이 지은 시를 비판할 수 없었던 점도 있었지만 연산군의 시는 나름대로 애틋한 아름다움이 스며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산군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쓴 시를 모아 시집을 펴내기로 했다. 한국역사상 유일한 왕의 시집은 중종반정으로 모두 불타 없어졌지만「연산군일기」에 남아 있는 125수는 1987년 극작가 신봉승씨가 묶어「연산군시집」으로 펴냈다.

 시집까지 내기로 한 연산군은 어떤 실수도 용서하겠다며 신하들에게 취흥을 즐기라고 명했다. 하지만 성미를 아는 신하들은 취할 수 없었다. 작은 실수 하나가 죽음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취한 연산군은 술을 마시지 않는 신하들을 보면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내 친히 술잔을 돌릴 터인즉 받아 마시지 않으면 중벌을 내리리라"

 영의정 성준이 첫 잔을 받았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연산군의 술을 받는 신하들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대부분의 신하들은 술을 흘리지 않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그리고 많은 신하들이 술을 조금씩 흘렸다. 연산군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계속 술을 돌렸다. 드디어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전달한 예조판서 이세좌의 차례가 되었다. 연산군 즉위 이후 그 사실이 밝혀질까 두려워 불안감에 떨던 이세좌는 긴장이 지나쳐 술잔을 술병에 부딪히며 반이 넘는 술을 쏟고 말았다. 바닥에 쏟아진 술이 용포자락을 적시자 연산군은 술병을 내던지고 말았다. 인정전 양로연의 분위기는 깨진 청자조각처럼 더 날카롭고 싸늘하게 식어갔다.

 이세좌는 술을 흘린 죄로 9월 15일 파직되었다. 5일 후인 20일 전라도 무안 유배형이 내려졌지만 22일 다시 함경도 온성으로 유배지가 변경되었다. 그리고 1504년 1월 11일 특사로 석방되었다. 넉 달 만에 사면되어 도성으로 돌아온 이세좌는 홍귀달과 함께 다시 탄핵을 받아 3월 14일 강원도 평해로 유배길을 가다가 5일 후인 19일 거제도로 옮기라는 명을 받았다.

 3월 20일 밤, 임사홍의 사랑에서 연산군과 외할머니가 27년 만에 만났다. 연산군은 두 살 때 헤어진 외조모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외할머니 신씨는 폐비 윤씨가 사약을 마시고 죽어갈 때 남긴 피묻은 적삼을 연산군에게 전했다.

 갑자사화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3월 30일, 이세좌에게 사약이 내려졌다. 이세좌는 남해현에서 뱃길을 통해 거제로 떠나기 위해 남하를 하고 있었다. 의금부도사 안처직은 4월 4일 아침 곤양군 양포역에서 다음역으로 떠날 차비를 차리는 이세좌를 만나 어명을 전했다.

 "내 어미를 사사할 때 너는 좌승지로서 사약을 가져갔으니 오늘 그 죄로써 죽음을 내리노라", "중죄를 범하고도 몸과 머리가 나누어짐을 면하게 되었으니 주상전하의 은혜가 망극하구나. 나무에 목을 매려하니 몸을 가리게 행장 속에 명주 이불을 가져오라. 죽은 뒤에 개가 찢어먹지 못하게 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세좌는 각오하고 있던 일이라 너무나 태연했지만 죽음을 앞두고 뉘우치지 않고 의연히 받아들였다는 죄로 능지처참돼 도성의 저자거리에 효수되고 말았다.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음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을 이세좌를 생각하며 분노했던 것이다.

 이세좌의 아들들도 모두 귀양지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당시 좌의정으로 권력의 핵심에 있던 이세좌의 숙부 이극균도 이세좌를 비호했다는 사실로 4월 1일 경북 인동현으로 유배된 후 윤 4월 12일 사약을 받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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