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임금 같은 어진 신하가 되어라1`
상태바
`순임금 같은 어진 신하가 되어라1`
  • 남해타임즈
  • 승인 2015.04.21 14:28
  • 호수 4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 - 문화해설사 서재심의 이순신 이야기1
서재심
문화해설사

 임진왜란 최후의 격전지이자, 성웅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남해는 그동안 노량해전승첩제와 이순신 장군 운구행렬 재연 등을 통해 장군의 높은 뜻을 기리고 추모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들은 효율성과 예산사정 등을 이유로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이에 본지는 이순신의 성지(聖地) `남해`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그것을 구체화한 내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오랫동안 이순신 장군에 대해 공부해 온 서재심 문화해설사의 이순신 이야기를 통해 장군의 삶과 철학, 남해지역의 발자취, 우리에게 남긴 교훈과 과제 등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스스로 자신의 입에서 나가는 말은 늘 긍정적이고 복을 부르는 말들을 해야지 삶이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은 1545년 음력 3월 8일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건천동은 지금의 인현동이다. 우리가 지금 충무공의 탄신일을 4월 28일로 알고 있는데, 그 해 음력 3월 8일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28일이다.
 충무공의 이름 이순신은 중국의 삼황오제에 나오는 전설속의 이름 순(舜) 임금에서 따왔다고 한다. `순임금처럼 어진 신하가 되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다. 충무공의 아버지 이정이란 분은 네 분의 아드님을 두시는데, 큰 아들 희신, 둘째 아들 요신, 셋째 아들 순신, 넷째 아들 우신이다.
 삼황의 첫째인 복희는 태호(太昊 : 큰 하늘)라 불렸으며, 뱀 몸에 사람 머리를 하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사냥법과 불을 활용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 복희에서 `희`자를 따와 `희신`이란 큰 아들 이름을 지어셨고, 둘째아들 `요신`은 요임금에서 따오는데, 요임금은 공자가 추구했던 이상형의 정치를 행한 사람이다.
 요 임금시절 백성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정도로 태평성세를 누렸다. 요는 띠집에서 조악한 음식을 먹으며 일반 백성들과 동고동락하였다. 천하에 한 사람이라도 배고픔이나 추위를 겪거나 범죄로 피해를 입는 이가 있으면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으며, 농업을 중시했다. 90세(재위 70년)에 순에게 양위했다.
 요에게는 아들이 있었지만 `내가 아들에게 양위하면 한 사람은 즐거워하지만 많은 사람이 슬퍼한다. 아들에게 양위하지 않으면 한 사람은 슬퍼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한다`고 생각하여 현자인 순에게 양위한 것이었다.
 `순`은 효자였다. 부친은 맹인이었고, 모친은 계모로 여러 차례 순을 죽이려 했지만, 순은 끝까지 효성을 다했다.
 요가 효자인 순에게 양위한 사실은 충효 사상을 국가의 통치 이념 중 하나로 삼는다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순 역시 요와 마찬가지로 아들이 있었지만, `내가 아들에게 양위하면 한 사람은 즐거워하지만 많은 사람이 슬퍼한다. 아들에게 양위하지 않으면 한 사람은 슬퍼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한다`고 생각해 우에게 양위했다. 요·순 모두 친자에게 양위하지 않고 현자를 골라 양위한 것이다. 그런 깊은 뜻과 의미를 두고 지어주신 이름이 충무공 이순신의 형제분들의 이름이고, 특히 충무공 이순신, 순 임금은 효자셨고, 형제간의 우애가 특별했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을 보면 충무공 어머니 꿈에 증조부 이거(李据)가 나타나 "이 아이는 반드시 귀하게 될 것이니 이름을 순신이라고 하라" 해서 그대로 이름을 지었다는 말도 있다. 여하간 부모님께서 요순 같은 태평성대를 이루는 왕의 신하가 되라는 뜻으로 지어 주신 이름이니 국보급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희신과 요신께서 동생 이순신보다 먼저 돌아가시고 그 조카들을 모두 충무공께서 거두었다고 하시니 충무공께서는 정말 순 임금같은 삶을 살다가 가셨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자신의 입에서 나가는 말은 늘 긍정적이고 복을 부르는 말들을 해야지 삶이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가문을 잠깐 짚어 보면 할아버지 이백록 이란 분은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했다고 나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중종 때 있었던 `기묘사화`로 인해 벼슬길이 그렇게 순조롭지 못 했던 것 같다.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다.                     <다음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