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의 유배로 읽는 한국사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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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의 유배로 읽는 한국사 149
  • 남해타임즈
  • 승인 2015.07.14 11:59
  • 호수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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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천주교 박해와 유배되는 정약용

남해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 김성철
 한국 천주교 창설의 선구자 이벽(李檗, 1754∼1786)은 문중의 압박을 피해 그의 거처에서 단식기도를 하던 중 흑사병으로 죽음을 맞았다. 이벽의 죽음이 전해지자 권일신, 정약종 등 교우들은 교세 확장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윤유일이 하정사 행렬에 장사꾼으로 가장하여 북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듬해인 1791년(정조 15) 봄, 주교의 회답을 받고 돌아왔다.

 그 편지에는 이승훈과 권일신이 교세를 확장시킨 점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함부로 사제성직(司祭聖職)에 개입한 부분은 책망했다. 그리고 청나라 신부를 파견하며 조상에 대한 제례는 미신이니 절대 행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제사 금지는 조선 교인들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러나 천주교인들은 제사를 기피하며 천주교인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1791년 여름 전라도 진산군 윤지충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도 잊고 천주교의 가르침이냐, 유교의 관습이냐에 대한 고심에 빠졌다. 같은 교인인 외사촌형 권상연과 의견을 나누었다.

 "상복을 입고, 곡을 하고 문상객을 맞는 것은 관습대로 한다면 제사를 없앤다고 어찌 불효라 하리"
 제사 없는 장례식이 조선왕조 최초로 치러지고 있었다. 문중들은 이 해괴한 장례에 경악했다. 유교를 숭상하던 시절에 위패를 땅에 묻고 제사를 없앤 것은 패륜으로 여겨졌다. 윤지충의 어머니 권씨는 선비 집안에서 처음으로 위패도 없이 제사도 받지 못한 채 땅에 묻힌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노론 벽파 홍낙안은 장문의 서찰을 남인인 채제공에게 보냈다. 천주교를 배척해서 시파를 공격하고자 하는 계략이었다. 정조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결국 윤지충과 권상연은 11월 13일, 전주의 풍남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고 말았다. 이 제사 문제에 대해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전교지 나라의 문화 풍습을 존중하여 전교하라"는 발표로 해결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억울한 순교였다.

 "이승훈을 평택현감에서 파직하라. 천주학 서적을 가진 자는 일단 잡아들이되 회유당한 자는 방면하라. 우두머리 권일신을 잡아 추국하라. 과거 지원자 중 사교에 관련된 자는 모두 제외시켜라"

 정조는 대신들의 상소를 가납했다. 잡혀온 천주교도들은 위기를 넘기기 위해 배교의 길을 택하거나 몇몇은 배교를 거부하다 다른 지방으로 옮겨갔다. 권일신은 모진 고문 속에서도 순교의 길을 가고자 했다. 배교하면 당상관의 벼슬을 주겠다는 유혹에도 `죽여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정조는 그를 이기지 못하고 제주도 유배형을 내렸다. 하지만 넝마처럼 찢겨진 권일신이 소신을 굽히지 않은 점에 감복하여 도성에 있는 누이집에서 치료를 마친 후 형을 집행하라는 편의를 봐주었다.

 "권일신의 팔순 노모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지 않은가. 배교한다는 말 한 마디만 하면 노모가 있는 예산에서 노모를 모시면서 유배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라"

 지칠 대로 지친 권일신은 노모를 들어 회유하자 무너지고 말았다. 죽음 앞에서도 천주를 향한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며 순교의 길을 걷고자 했던 권일신도 어머니 앞에서는 자식에 불과했던 것이다. 천주교 제1세대를 장식한 그는 정조의 특례로 노모가 살고 있는 충청도 예산 땅으로 귀양길을 가던 도중 고문 후유증으로 객사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1795년(정조 19) 봄, 청나라 신부 주문모가 한양땅에 잡입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인 신부의 입국은 조정에까지 알려졌다. 다시 박해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은 예산으로 유배되었고, 정약전, 이가환, 이기양은 스스로 천주교를 배척하는 글을 써야 했다. 그리고 우부승지 정약용은 금정찰방으로 쫓겨나야 했다. 제사에 대한 문제에서 정조는 천주교를 내려놓았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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