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의 해양예식장과 해양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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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의 해양예식장과 해양사진관
  • 김종수 시민기자
  • 승인 2015.08.25 10:29
  • 호수 4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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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문화원, 포토에세이 마을역사수집 15

  사진속 거리는 읍 사거리 파리바게트(옛 해양당서점) 맞은편에 있는 SK텔레콤과 다이소 위치의 1960년대 풍경.

당시 해양당서점을 운영했던 이정환(80·남해읍) 어르신은 "해양당서점 오른쪽이 후생병원이었고 그 건너편 건물 1층이 해양사진관, 2층이 해양예식장으로 운영됐다"고 설명했다.

또 해양당의 전화번호가 처음에 39번에서 2039번, 4-2039, 64-2039, 864-2039로 바뀌어 왔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간판의 두 자리수 전화번호를 보면 당시에는 전화기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두 자리수 번호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되자 네자리수로 바뀌게 된다.

되돌아본 남해100년사(편저 장대우)에 따르면 1979년 남해읍에 자동식 전화가 개통됐으며 기계식은 1800회선이 있었다고 한다. 교환원을 거쳐야 통화할 수 있었던 `수동식 교환시스템`은 1986년 5월, 전자교환기 전면개통으로 사라졌으며 한때 신붓감 1순위였던 교환원이라는 직업도 함께 사라졌다.

사진 속의 자동차는 우리나라 자동차 생산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진 시발(始發)자동차로 국제차량제작(주)의 최무성 씨가 드럼통으로 차체를 만들고 미군 지프의 엔진과 변속기를 모방 제작해 조립했다.

생산초기에는 촌스러운 디자인과 비싼 가격 탓에 잘 팔리지 않다가 1955년 광복 10주년기념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인기가 상승해 8만환 대였던 가격도 30만환 대로 껑충 뛰어 올랐다. 1963년 5월까지 총 2235대가 판매됐으며 상당수가 택시로 이용됐다. 삼화운수 간판 아래 `친절·신속`이라고 새겨진 것으로 보아 이 자동차도 택시로 이용된 건 아닐까 싶다.

<사진 = 마을역사수집 사료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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