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와 유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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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와 유년의 기억
  • 남해타임즈
  • 승인 2015.09.01 15:16
  • 호수 4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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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칼럼니스트
수필가, 시인
하태무


상전벽해! 세상의 변함을 두고 하는 사자성어.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세상의 변화에
비유한 말이다.
그러나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될 수 있을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입추 처서를 지났으니 이젠 정녕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기를 느끼니 엊그제 더워 죽겠다던 여름날도 슬슬 뒷걸음질 치고 있다.

만사가 그러하다. 곧 전쟁이 나서 한반도가 쑥대밭이 될 것 같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위기의 순간을 지나니 평온한 날이 찾아왔다. 잠깐 동안의 시간에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해 버린 느낌.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쳐다보고 아슬아슬하게 생각했을 테고, 외국에 사는 교포들의 관심사는 오직 우리나라의 안위에 있는 듯 했다. 그동안 실제로 외국사는 블로그 친구들의 전화를 얼마나 많이 받았었는지…

상전벽해! 세상의 변함을 두고 하는 사자성어.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세상의 변화에 비유한 말이다. 그러나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될 수 있을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월의 무상함을 연상케 하는 고사성어이다.

이런 날들을 지나오면서 오늘 세상이 끝날지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심정으로 그날그날을 최선을 다하여 삶을 누리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살이가 아닐까.

뽕나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뽕나무 이야기라면 필자는 참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어릴 때 어머니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누에를 키웠다. 막내였던 필자는 누에의 먹이인 뽕을 따는 어머니를 따라다녔다.

뽕를 따는 게 아니라 뽕밭 주변의 경치도 보고, 그리고 오디를 따 먹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내 유년의 기억 속에 뽕나무와 누에를 빼면 거의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우씨 보다 작은 누에알에서 개미같이 작은 누에가 고물고물 기어 나와, 어린 뽕잎도 잘게썰어줘야 먹던 누에가 한잠 자고 두잠 자고 세 잠을 자는 동안 새끼손가락만 하게 자란다. 그렇게 자란 누에는 뽕나무 가지를 꺾어 주어도 가지에 붙어 있던 뽕잎이 순식간에 먹어치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난했던 그 시절, 누에를 키우는 봄, 가을철에 필자는 누에에게 방을 뺏기고 약냄새 나는 한의사 아버지 제약 방에서 자야만 했었다. 혹시라도 누에 방문을 열면 누에가 감기에 걸린다고 혼이 나곤 했었다.

변온 동물인 누에가 고치를 다 만들 때까지 누에의 방은 항상 습도와 온도를 잘 맞추어 적정선을 유지해야만 했다.

아침저녁 군불을 지펴 주어야 했고 잘 들여다보지도 못하게 했다.  그래도 아무도 몰래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여다보면 모두가 잠 든 밤에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고 사그락사그락 뽕잎 갉아먹는 누에의 움직임은 신기하기만 했었다.

알에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변해서 누에고치를 만들기까지 누에는 다섯 번의 잠을 자고 몸이 투명하게 변하면서 비로소 길러준 이에게 보답을 한다.

뽕잎으로 자기 몸에 축적된 비단을 풀어 고치를 만들고 하얀 누에고치 속에 몸을 감추고 들어가는 것이다. 누에섶에 보석처럼 누에고치가 하얗게 매달린 모습은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다웠던지…. 그리고는 고치는 실 뽑는 기계 속에 들어가 명주실을 뽑아내기도 했었다.

찰그락찰그락 소리를 내며 발로 오르간 페달을 누르듯 규칙적으로 물레를 돌리는 실 잣는 기계. 슬슬 끓는 물속의 누에고치에서 비단 실이 풀려 나와 실타래에 감기면서 갈색 번데기가 동그마니 몸을 드러낼 때까지 우리는 숨을 죽이며 그 순간을 기다렸다.

따끈따끈한 번데기를 건져 참기름에 볶아 먹던 맛있는 번데기는 그 이후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했다. 혹 통조림으로 번데기를 판다지만 어머니가 삶아서 만들어 주시던 번데기 맛은 아닐 테다.

남해 어딘가에 아직도 누에를 키우고 명주실을 뽑는 곳이 남아 있을까? 세상은 변해도 옛날의 아름답던 풍경은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무상한 세월 속에서도 유년의 기억은 늘 아련한 추억 속에 있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던 내 어머니는 내 삶의 스승으로, 아픈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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