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아름다움
상태바
글의 아름다움
  • 이현강 학생기자
  • 승인 2015.12.29 17:16
  • 호수 47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현강 학생기자
(제일고 1학년)

글은 그것이 시가 되었든 논설문이 되었든, 그 구성이 아주 조화롭다.

시작은 하나의 단어이다. 단어는 글의 기본이 된다. 각각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의미가 같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어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어들이 엮여 한 줄의 문장을 만들어낸다. 하나의 문장은 다른 문장과 긴밀하게 이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장은 또다시 합쳐져 하나의 단락을 이루거나 한 편의 글을 만들어낸다. 어떻게 이 모든 글귀들이 이토록 어여쁘게 짜여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커져만 간다.

그렇다면 글은 치밀한 것이다. 그 짜임에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저 어딘가 수를 다루는 학문에서의 가혹한 치밀함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읽는 이에게나, 쓰는 이에게나 무한한 자유를 선사한다.

새하얀 백지와 연필 한 자루를 받은 느낌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글 위에서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는 모여 하나의 큰 그물을 만들어낸다. 역설적이지마는, `자유로움`이 빽빽히 모여 만든 치밀함이기에 그 치밀한 정도는 무엇과도 비길 수 없고, 그렇기에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글은 빛나는 말들로 짠 아름다운 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읽는 이에게 그가 원하는 감정을 무한히 전해줄 수 있다. 그 감정을 `기쁨, 슬픔`처럼 표현할 수 있는지 와는 상관 없이 말이다.

결국, 읽는 이가 원하는 `감정`이라는 고기를 `글`이라는 그물로 들어올리는 과정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독서(讀書 : 글을 읽다)`인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 10대들의 문학적 감수성은 암울하기만 하다, 가을 낙엽 옆에서 소설을 읽으며 잔잔한 여운을 느끼는 문학소녀는 사라진 지 오래고, 시 구절을 머리 속으로 되뇌며 깊은 고민을 하는 문학소년 또한 찾기 힘들다. 이제는 옛날의 그 감성을 되살려야 한다.


감정이 메마른 10대들이 그들 스스로 감정을 되살리기를 포기한다면, 이는 너무 가엾지 않은가.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