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울리는 북소리처럼 마음을 울리는 책 만들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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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울리는 북소리처럼 마음을 울리는 책 만들고 싶어
  • 남해타임즈
  • 승인 2017.08.24 13:30
  • 호수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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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 도마 출신 이영란 향우와 결혼

좋은 감독이 만든 영화를 믿고 보듯이 좋은 출판사를 믿고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다. 청소년 교육도서를 출판해온 `양철북` 출판사도 이런 매니아 층을 거느린 출판사 중 하나다. 2001년 시작해 16년간 꾸준히 문학, 교육 도서를 발간 중인 양철북 출판사와 남해의 인연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이 곳은 고현 도마출신 이영란 향우의 남편 조재은씨가 운영하는 출판사다. 1992년 `남해 여자`를 만나 결혼 한 후 일 년에 서너 번 꼭 남해를 찾곤 했다던 조재은 대표. 그와 남해의 각별한 인연과 양철북이 만들어 낸 책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주>

여기가 출판사?
이층 주택을 출판사로 꾸며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양철북`은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도무지 사무실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주택가 한 가운데 아담한 2층 양옥집 문패 자리에서 `양철북`이라는 상호를 발견했다. 자그만 정원을 지나 2층집을 출판사 사무실로 사용 중이다. 예상치 못한 공간에 어안이 벙벙한 기자에게 조재은 대표는 "출판사 중에는 더러는 이런 주택을 사무실로 사용하는 곳이 있어요. 밥도 해먹고 예전엔 작가들과 출판 관계자들을 불러서 김장을 담기도 했죠. 제일 좋은 건 담배를 맘껏 피울 수 있는 점"이라며 너스레를 떨며 반겼다.

양철북 출판사는 2002년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첫 번째 책으로 발간한 후 매년 꾸준히 책을 만들고 있다. 양철북의 첫 번째 책, 일본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는 국어 교과서에 실릴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책이다.

"출판한 책 중에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 대 여섯 권인가 일곱권 인가 되는 것 같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의 책, 이상석 선생님 책, 박경화 작가와 미국 작가인 벤 마이 켈슨 작품들이지요. 성장 문학과 청소년, 교육 관련 책들이어서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고 말한다.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길
`교육`이라 믿어
^경남 산청 출신인 조 대표는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출판사에 몸을 담았다. 학생운동을 하며 만났던 선배가 운영하던 출판사였다. 자신의 출판사를 만들고 첫 책으로 선택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는 조대표가 출판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책이다. "그 무렵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이 많았죠. 그런데 이 책은 저에게 `세상에 밀려서 대충 살아가는 삶을 살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80년대 대학에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었을 때의 충격과 비슷했어요"라는 조 대표. 그 후로 문학서적과 교육자들이 글을 책으로 엮어내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여전히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길은 `교육`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올해는 탁동철 교사의 `하느님의 입김`과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교육 선집과 `달빛 마신 소녀` 등을 발간했다.

양철북에서는 책 발간 뿐만 아니라 독서관련 전시와 팟캐스트도 운영 중이다. 교사들을 위한 팟캐스트인 `학교종이 땡땡땡`와 이오덕 권정생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의 삶을 돌아보는 전시회 `아이처럼 살다`를 기획 운영한다. 이 전시회는 8월 1일부터 9월 3일까지 부산광역시교육청 놀이마루 전시실에서 열린다.

"진정한 교육자였던 세분의 삶의 흔적을 모아놓은 전시회입니다. 서울, 경기, 강원, 부산에서 순회 전시회를 진행했는데 무료전시이니 찾아보시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장모님처럼 인자로운
`남해` 마음 한 켠 차지
^그와 남해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조 대표는 남해와의 인연이 이영란씨와 결혼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진주 동명고등학교 재학 당시 가장 친한 친구였던 안상욱을 따라 남해로 놀러간 적이 있었단다. "상욱이가 남해가면 예쁜 여학생들 많이 있다고 해서 상욱이를 따라 남해에 놀러 왔었다. 예쁜 여학생은 못 만났지만 이튿날 물건리 앞 바닷가에 친구와 함께 놀러 갔었다. 그 날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바다를 본 날이었다"고 회상했다.

친구와 재밌는 추억이 있는 남해가 처갓집이 된 후 그 에게 `남해`는 장모님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수배 중에 아내를 만나 처가식구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믿고 결혼을 허락해 주신 분도 장모님이었고 남해를 자주 찾았던 것도 그런 장모님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일 년에 한 두 번 남해를 방문한다는 조 대표는 아름다운 남해의 환경이 오래도록 지켜지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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