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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풂과 나눔의 정(情)을 쌓는 설날
남해타임즈 | 승인2018.02.08 11:40|(585호)
장현재
상주초 교사
본지 칼럼니스트

입춘을 지나자 햇살이 제법 두꺼워진다. 하지만 동장군은 쉽게 물러나지 않으려는 듯 차가운 북풍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겨우내 잎을 간직한 소나무, 편백은 시래기 빛보다 더 진하다. 이런 겨울의 끝자락에 설레는 만남과 풍요가 함께하는 설이 있다.

설을 앞둔 읍내 오일장 날 아침 풍경은 다채롭다. 이른 아침 시장 근처 버스 정류장엔 허리도 굽고 걸음도 불편하신 어르신들의 걸음이 바쁘다. 설 대목장 보러 어물전, 참기름 집, 오꼬시 만드는 집 등 찬바람도 마다하고 바삐 서둘지만 마음만큼 시원치 않다. 설음식으로 떠올리는 대표적인 게 인절미, 가래떡, 절편이다. 음식의 재료는 쌀인데 찹쌀을 불려 쪄서 쳐 만든 것은 인절미, 멥쌀을 불려 쪄서 쳐 내어 둥글게 뽑은 것은 가래떡이고 넓게 만들어 떡쌀로 눌러 낸 것이 절편이다. 이 음식에는 어떤 감미료도 들어가지 않는다. 단지 서로 붙지 말라고 고물과 참기름만 바를 뿐 쫀득하면서도 질리지 않은 음식이다. 

절편을 한 잎 베어 물면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잔칫집에서 봉석으로 가져온 신문지 묻은 흰떡을 먹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런 떡 음식 문화는 우리나라가 농경사회임을 말하고 있다.

벼농사가 중시되었던 옛날 농가에서는 수확한 쌀은 곳간과 뒤주에 보관하였다. 천석꾼, 만석꾼 등 쌀 보관 곳간과 뒤주의 크기는 부(富)를 상징하였고 뒤주 열쇠는 집안의 살림을 관장하고 있는 시어머니가 보관하였다. 

뒤주 하면 많이 떠올리는 것은 조선 시대 양반가로 영조 때 낙안군수 류이주가 건축한 전남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에 있는 타인능해(他人能解)이다. 이 집 뒤주는 통나무 속을 파서 만든 것으로 타인능해란 `누구나 이 쌀 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으로 마개를 돌리면 한 되에서 두 되 정도 나온다. 그리고 뒤주가 웬만큼 비워지면 주인은 또 쌀을 채워둔다. 당시 류씨 집안은 해마다 쌀을 200가마 정도 수확하여 36가마가 배고픈 이들의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뒤주는 가져가는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여 행랑채에 두었다. 다음으로 떠올리는 뒤주는 경주 최 부자 집이다. 최 부자 집에는 700~800석 쌀을 한꺼번에 저장할 수 있는 곳간이 있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 쌀 저장소로 그 부의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최 부자 집에도 보릿고개에 이르면 식구들도 쌀밥을 먹지 못하게 했으며 과객이나 배고픈 이들에게 쌀을 나누어주기 위해 쌀이 그득한 뒤주를 여러 개 비치해 두었다. 뒤주의 구조는 특이하여 쌀을 퍼낼 수 있는 구멍은 성인 남자의 두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잡히는 만큼 쌀을 가져갈 수 있게 했다. 이 최 부자 집에서 한 해 거둬들이는 쌀은 3천 석으로 1천 석은 집, 1천 석은 과객 접대용, 나머지 1천 석은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도록 하라는 육훈(六訓)에 따라 모두 나누어 주었다 한다.

이런 가진 자의 베풂은 날로 개인화와 돈이면 최고라는 지금 세태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 대표적인 게 베푸는 자의 마음가짐을 말하는 운조루의 낮은 굴뚝과 가진 자로서 표상이 된 행동지침인 육훈의 덕목이다. 운조루의 굴뚝은 여느 집들처럼 지붕 위로 높이 솟아 있지 않다. 마당 구석에 작은 굴뚝이 나 있을 뿐이다. 이는 밥을 지을 때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를 보면 배고픈 이웃들이 더 힘들어 할까 봐 염려하여 굴뚝의 높이를 낮춘 것이다. 그리고 12대 만석꾼, 9대 진사를 이어 온 최 부자 집의 덕목은 과거를 보데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고, 만 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흉년 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며,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고,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는 내용이다. 이런 마음과 덕목을 가훈으로 지켰기 때문에 운조루는 6.25를 겪으면서도 온전했으며 최 부자 집은 명부(名富)가 명문가(名文家)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돈이 있어야 대접을 받는 시대라는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다 보면 작은 부자는 될 수 있지만 대대로 존경받는 큰 부자는 될 수 없다. 설이 일주일 남았다. 베풂과 정이라는 선은 쌓을수록 되돌아온다고 했다. 이번 설은 따뜻한 떡국 한 그릇의 의미를 되새기며 가족, 이웃, 정다운 사람끼리 물질이 아닌 마음을 열어 서로 보듬는 절편처럼 차지고 질리지 않는 명절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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