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돌`이 출산에 얽힌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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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돌`이 출산에 얽힌 일화
  • 남해타임즈
  • 승인 2018.02.08 11:45
  • 호수 5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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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본지 칼럼니스트

때 아닌 알싸한 초겨울 바람에 마른 낙엽이 서걱서걱 비명을 지르던 날이었어. 오후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대문 안으로 막 들어서자 마당 어디선가 낑낑 소리가 들리더라고. 길고양이라도 들어왔나 싶어 여기저기 살펴봤지. 어머나, 세상에! 

우리가 집을 비운 잠깐 사이 복돌이가 혼자 몸을 푼 거야. 글쎄, 소맷돌(돌계단의 난간)과 개집 사이의 좁은 틈에서 낯선 생명체가 울고 있더라니까. 수컷만 세 마리, 사람으로 치면 아들 세쌍둥이, 전문용어로는 `1타 3피`지. 황급히 따뜻한 물에 수건을 적셔 핏덩어리들 몸을 닦아 준 뒤 어미 옆으로 원위치 시켰어. 그리고는 담요를 가져다 새끼 배 밑에 깔아 주고 어미에겐 따뜻한 우유를 주었지. 헌데 출산이 다 끝난 건지 덜 끝난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개집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암만 기다려도 더는 소식이 없는데, 내가 자꾸 안을 들여다봐서 그런지 제집에서 불쑥 튀어나와 풀덤불 안으로 꼭꼭 숨어 버렸네. 그새 어둠이 짙어져 마당의 전등을 있는 대로 켜고 애타게 불러 봤지만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해. 그 밤에 다시는 어미를 못 봤어. 동물들은 스스로 후처리를 한다니 그나마 다행인 거지.

우와, 어른 손바닥 크기의 세 놈이 눈도 못 뜨고 꼼지락대는 걸 한번 상상해 봐. 할머니들이 손자에게 `아이고, 우리 강아지!` 하잖아? 이해가 가더라니까. 연약한 생명체에 대한 연민과 탄생의 신비로움, 거참 감정이 묘해지데. 비록 종(種)은 달라도 같은 어미인지라 이심전심으로 그 마음을 알겠더라고. 수컷만 키워 온 터에 암컷 산바라지는 처음이지만 당황스럽진 않았어. 젖도 잘 돌게 할 겸 속이 헛헛할 산모에게 영양 보충을 시켜 줄 생각뿐이었지. 삼칠일 동안 북어 대가리와 장어를 열심히 고아 댔네. 아흐렛날 드디어 새끼들 눈이 게슴츠레 열렸어. 보자, 지난달 22일에 태어났으니까 열이레 만에 눈이 떨어졌구먼. 이튿날부터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아주 용을 써. 고물고물 꿈틀대는 것이 얼마나 귀엽게. 보름께는 그새 컸다고 밖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오데. 며칠 지나자 이번에는 아예 마당을 접수했어. 그래 봤자 한 주가 지나고 다시 한 주가 지나도록 온종일 잠자는 게 일인 걸, 뭐. 잠꾸러기! 

그런데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어. 복돌이가 출산 후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이웃에 민폐를 끼칠 만큼 심하게 짖고, 제 꼬리를 피가 나도록 물어뜯는 거야. 하는 수 없이 죄수 목에 항쇄 씌우듯 청색 테이프를 두른 골판지를 목에 채웠어. 항쇄란 과거 죄인에게 사용한 형틀인데 춘향이 목에 채운 널빤지를 상상하면 돼. 여하튼 얼마나 버둥대는지 그것도 오래 못 버텨. 하루 이틀도 아니고 꼬리와 줄기차게 씨름하는 걸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자니 보는 내가 더 아프더라니까. 이때 복돌이를 키우겠다는 사람이 홀연히 등장했어. 안 그래도 덩치 작은 개 한 마리를 키우려던 참에 우리 복돌이 이야기를 들었다네. 집이 조금 외져서 많이 짖을수록 환영한다니 이것도 인연인가. 아무래도 그리로 보내는 게 최선일 것 같더라고.

복돌이 새끼? 주위에서는 생후 40일이면 분양하라는데 고민이 엄청 많았지. 그런데 새끼를 달라는 사람들이 또 나타났네. 동네 꼬마들이 오가며 대문 밖에서 몽실몽실한 강아지들을 보고는 귀여워 죽는 거야. 그 중 한 아이가 엄마에게 어지간히 졸라 댄 모양이지. 엄마가 아이 손에 이끌려 함께 왔더군. 잘 키우라 당부하고 입양 보냈어. 또 한 녀석은 동네 가겟집 따님 둘이 와서 예쁘다고 껴안고 얼굴을 부비고 셀카도 찍고 하더니 데려갔지.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고 모두 예방주사를 맞혀 보냈어.

복돌이 가던 날은 남편이 나보고 잠깐 나가 있으래. 그 틈에 차에 실어 갖다 줬더라고. 말은 못해도 감정은 있으니 자기가 예쁨 받은 건 알겠지. 달포를 훌쩍 넘기는 동안 개 네 마리로 북적대던 집 마당에 정적만이 흐르는군. 모두 떠나고 그중 우리를 제일 잘 따르는 한 녀석만 남았으니까. 어미 빈자리를 채우라는 의미에서 이름은 복돌이로 부르려고. 말하자면 복돌이Jr.인데 졸지에 엄마와 형제들과 생이별한 복돌이 주니어가 측은타. 고민거리가 술술 해결되었건만 하나도 기쁘지 않은 나는 또 어떻고. 만날 땐 참 좋더니 헤어지니 참 아프구먼.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얘들에게 정을 주지 않을 테야. 나중 가면 어떨지 몰라도 지금 마음 같아선 그래. 복돌아! 새 주인과 더불어 부디 행복해야 돼. 헌 주인은 깨끗이 잊으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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