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이는 97세 막내는 81세, 장수하는 6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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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이는 97세 막내는 81세, 장수하는 6남매
  • 김수연 시민기자
  • 승인 2018.03.15 09:39
  • 호수 5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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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형제 부부는 고현면 선원마을 지키며 살아 "장수 비결? 그저 의좋게 농사짓고 살았을 뿐"
맨 뒤쪽 나란히 앉은 두 분이 맏이인 정광섭(97)·박민정(88) 부부, 앞쪽 왼쪽부터 앞뒤로 막내 정두천(81)·박봉월(76·왼쪽 두번째) 부부, 셋째 정익섭(91)·장춘정(83) 부부, 넷째 정덕섭(87)·안순희(81) 부부. 맨왼쪽 앞은 천동마을 정대아(94) 할머니.

고현면 신광이용원을 통해 들은 제보는 이랬다. "고현면 선원마을에 팔십 넘은 어르신 6남매가 모여 산다"는 이야기. 실제로는 제보와 조금 달리, 5남 1녀 6남매 중 한 분은 고현면 천동마을에, 한 분은 부산에 산다고 한다. 그러나 막내 어르신이 39년생으로 81세인데 그 위로 모두 생존해 계신 것은 사실이었다. 요즘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전했다지만 80세를 넘긴 6남매 모두가 생존해 계신다는 건 분명 흔치 않은 일이다. 그분들을 만나 뵙고 가족이 모두 장수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들어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어르신들을 만나러 간 선원마을 회관에는 6남매 중 정익섭(91·셋째), 정덕섭(87·넷째), 정두천(81·여섯째) 형제 세 분과 마을 어르신들이 한 방에 가득 모여 계셨다. 넷째인 정덕섭 어르신은 6남매와 그 배우자들의 이름과 출생연도, 나이를 빼곡하게 적은 수첩을 보여주었다. 

"6남매가 이 선원마을에서 나고 평생 살아왔지. 둘째 누님(94·정대아)은 이웃한 고현면 천동마을에 살고 계시고, 다섯째(84·정민섭)는 부산 사하구에 살고 있어요."

황해도 해주 정씨 15대손이자 맏형인 정광섭(97) 어르신은 선원마을에서 12년째 동수(洞首, 마을의 제일 어른)로 계신다고 한다. 선친 정용기 씨도 94세까지 사시다 돌아가셨다. 게다가 4형제의 배우자인 할머니 네 분도 모두 생존하셔서 마을회관까지 나와 계셨다. 확실히 장수 집안은 맞는 것 같다.

그럼 이 어른들의 장수 비결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했다. 정덕섭 어르신은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비결 같은 건 없다고 하신다.

"달리 비결이랄 게 없어. 지금껏 벼농사며 마늘, 시금치 농사지은 게 다야. 술, 담배 안 하고, 밥도 적당히 먹어. 아침저녁으로 논밭 다니는 게 운동이지 뭐. 운동기계도 없었고 그래도 오래 살어. 도리어 잘 먹으면 빨리 돌아가."

그래도 굳이 들자면 선원마을 물이 좋아서라고 했다. 그러자 선원마을 전 이장인 하금호(70) 어르신이 한마디 덧붙인다. 

"선원(仙源)이란 이름처럼 우리 마을은 물이 좋지. 수원지라서 고현면 전체가 이곳 물을 먹어요. 그중에서도 우린 상수원 위쪽 삼봉산 자연수를 받아서 먹어. 큰 바위, 돌덩이가 약 1㎞ 정도 쌓여 있는데 그곳을 지나오는 물이야. 1급수에서만 산다는 배에 칠색을 띤 피리(피라미)가 지금도 거기 살고 있어." 

박세범(71) 현 이장은 "선원마을 전체 75가구 중에 70세 이상이 85프로를 차지해요. 50세 이하로는 네 명뿐이야. 그러니 70대면 아직 청년이어서 마을 일을 도맡아하고 있지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선원마을만이 지켜오는 전통 관례를 한 가지 소개했다. 

"음력 설에는 선원마을 사람들 전체가 모여 떡국을 나누어 먹고 공동세배를 해요. 선원마을에만 이런 전통이 아직 남아 있어요. 진양 하씨, 해주 정씨, 장수 이씨, 죽산 박씨 이렇게 네 성받이가 마을 사람의 대부분이다 보니 함께 일을 해도 우애 있고 화합하며 살지요."  

박세범 이장의 말에 따르면, 100세까지 생존하신 분들이 대여섯 분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선원마을은 이런 미풍양속과 다정한 우애가 살아있어 절로 살기 좋고 장수하는 마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6남매의 맏이인 정광섭 동수를 뵈러 형제 세 분과 할머니 네 분을 따라갔다. 정광섭 어르신의 부인이자 집안 맏며느리인 88세 박민정 할머니가 잔뜩 허리가 굽은 채 지팡이를 짚고 오르막길을 걷는 걸 보면서, 수십 년 긴 세월 동안 물동이를 이고, 나뭇지게를 지고 이 길을 수없이 오르내리셨을 광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97세의 정광섭 어르신은 거동이 조금 불편했지만, 기꺼이 방에서 나와 사진촬영에 응해주셨다.

선원마을 장수 집안 형제들을 만나고 나오며 그분들이 지금껏 그래왔듯이 무병무탈하게 정다운 우애를 나누며 오래오래 사시기를 마음속으로 소망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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