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운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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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운명·2
  • 남해타임즈
  • 승인 2018.05.04 16:35
  • 호수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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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관 호
수필가
본지 칼럼니스트

운명에 관한 명언들을 들여다보면 마치 운명은 매우 무서운 것이고, 사람이 극복해야 할 대상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나도 70평생 만만찮은 삶을 살았지만 운명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굳이 노력을 한다면 순리를 좇아서 사는 것, 우연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 주어진 여건을 잘 살펴서 최선을 다하는 것 등을 찬찬히 실천하다보면 운명도 비껴가고 액운도 행운으로 전환되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개가 스스로 아무 한 일이 없으면서도 자신이 잘못된 것이 모두 운명 탓이라 생각한다. 그것도 일을 다  망쳐놓은 뒤에 말이다. 그리고는 남을 원망하고, 왜 도움을 주지 않았느냐고 막나간다. 그야 자포자기(自暴自棄)하거나 자살하는 사람보다야 백번 낫다. 하지만 미리부터 순리를 따랐다면 운명 따위를 입에 올릴 일조차도 생기지 않았을 일이었다.
나는 오늘 대도시 한복판에 있는 은행에서 번호표를 뽑았더니 대기자수가 30명을 넘었다. 가방 속에서 책을 꺼내려다 말고, 시골 있는 동안 흙투성이가 된 신발을 닦기엔 충분한 시간이라 얼른 거리로 나섰다. `구두 닦는 값 4000원`이라는 표지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월요일에 쉬는 종교도 있나?`하고 생각하고는 은행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오후에 다시 구도심으로 일하러 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려는데 목적지를 경유하는 버스가 없단다. 세 정거장인데 걸어가랴, 택시를 타랴, 망설이는데 구두수선집이 있었다. 구두를 닦고는 잔돈을 받아보니 오천 원과 이천 원을 거슬러 주신다. 그러니까 아까 은행 앞에 있었던 그곳보다 천원이 싼 것이다. 이것이 우연인가, 운명인가? 나는 아무 한 일이 없는데도 천 원의 이득이 생겼잖은가?
나는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백분 활용하였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새벽부터 어둠에 사로잡히기까지 소리 나는 뼈골을 달래가며 `아야!`소리도 삼켜야했던 일에 비하면 이까짓 돌아다니고 사람 만나고 머리 굴리는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닌가?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은 만나야지만 문자로, 메일로, 전화로 처리하는 일이 꽤나 많고 보면 더욱 식은 죽이다.
나는 선친께서 주역이라는 책을 빌어서 남의 운명을 점치는 일과, 음양오행설이라는 것을 통해서 양택과 음택의 길지를 판가름하는 소위 풍수사의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이름 하여 운명철학이라고 하는 학문이다. 젊은 날 슬쩍 곁눈질을 해보았으나 내 머리로는 어려워서 자습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퇴직하고 사이버대학 과정을 밟으면서 들여다보니 일체유심조가 거기 있었다.   
내 자식이든 누구든 운명을 함부로 말하지 마라. 오늘을 열심히 살다보면 그 결과가 곧 운명이니라. 질병이 나를 파먹어 들어오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아서 생명이 위독한 사람, 그것이야말로 자충수지 그것이 어찌 운명이란 말인가? 담배를 한평생 피운 사람이 암에 걸렸다고 해서 조상의 묘를 탓하거나 집터의 지운정국을 불길지로 자리매김해서야 쓰겠는가?
인간에겐 운명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리 복잡한가? 환경과 시간과 내가 서로 맞물려서 돌아가며 부리는 조화가 워낙 복잡하다. 앞에서 보았듯이 내가 시간이 있어 비싼 값에 닦으려던 신발이 더욱 싼값에도 닦아지지 않던가? 어렵다고 운명이고 쉽다고 그저 우연인 것은 아니다. 내 나라 사람만 살았던 조선 땅을 왜놈들이 삼킨 것, 그것은 우연도 운명도 아닌 자업자득이었던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최선을 다하거나 혹은 다하지 아니한 결과가 초래하는 데미지를 사람들은 운명이라 치부한다. 피해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점에서 보면 철학자들의 말이 일리(一理)있다. 그러나 원점에서 들여다보면 운명은 자기에게서 출발한다. 순리와 순명과 최선, 사람이 살면서 지켜야 할 기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행위가 자충수란 것을 모르는 사람은 무식이다. 그래서 공자는 `무식은 죄`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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