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영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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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의 영민함
  • 남해타임즈
  • 승인 2018.08.20 12:42
  • 호수 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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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 화
남해군상공협의회 사무국장
본지 칼럼니스트

물이 깊어야 배를 띄우는데 정작 물을 채우지 못했다. 뭍에서 배를 띄우려 한 격이니 여러모로 부족하다. 세월을 앞질러 가려고 애썼던 적이 있었다. 치열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세상에 발붙일 책임일 거라 믿었던 그때였다.

걸음을 잠시 멈추거나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 몇 걸음 나아가는 것임에도 왜 잘 몰랐을까? 올려다볼 뿐 아래를 살피지 못한 어리석음과 소통이 필요했다. 내면을 솔직하게 풀어헤쳐 볼 여정을 만들었다. 물빛 좋은 제주 세화해변 카페 공작소에 걸린 객들의 자취는 무척이나 감성적이었다. 가치와 현상의 아름다움이고 견문을 자극하는 달콤한 미끼 같다. 세월을 유람한 메모장에서 가르침을 남기고 떠난 인간성의 고양은 이제껏 흉내 내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메뉴판 옆 절대 정숙이란 주인장의 소박한 경구가 주는 타격은 크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인가? 정숙하라는데 오히려 엄밀한 얘기를 나눈 것 같다. 자리를 옮기면 또 다른 소회를 느낄까 하는 기대를 바랐다. 혼자보다 대상이 필요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샤르니 숲길을 걷는 내내 삶의 궤적을 연이어 추적한다. 초록 나무와 갈색 흙길은 자연의 숨소리를 만들고 있다.
꽤 오랜 시간 풀잎을 기어오르는 달팽이에게 눈길을 모았다. 손가락으로 건드려도 까닥 안 하는 달팽이를 보면서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풍경은 절박한 시간 속에서 나오지 않음을 느꼈다.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관조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기억,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 살아가는 도구나 수단을 갖추기 쉽지 않다는 느낌, 쉰 한해를 거치면서 상상력만 앞섰지 정작 `무엇 때문에`라는 것을 밝히지 못했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소망·미련·애증은 잠시 끼웠다 풀어내는 장식품이 아니었길 소원하게 된다.

곧게 뻗은 삼나무들은 지난 바람에 흔들렸던 것을 시치미 떼듯 굳세어서 끄떡없다. 외부의 자극에도 동요되지 않고 자기를 지키는 평정심이 마냥 부럽다. 자연에서 배우는 교훈에 숙연할 뿐이다. 남들이 보기에 별 볼 일 없는 것이지만,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린다면 슬픈 일이다. 상대가 남긴 흔적이 나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릴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찌 보니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가 포함된 것이다. 마음을 그토록 저미게 했던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안다는 것은 자기의 미련과 우악스러움을 아는 것인데 상대방의 무지를 찾으려고 했으니 시류에도 맞지 않고 옹색하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나부터 달라지면 함께 달라질 세상이다.

인생이란 내 삶의 고통을 녹여 `아름다운 유골`을 만드는 달팽이의 느릿한 시간이라 했다.  가장 좋고 훌륭한 것이 생각나지 않거든 아슬아슬한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글자 하나, 마침표 하나에도 애써 고민하지 않음이 또 다른 응시이다.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곁가지 생각들은 대부분 미봉책이니 느리더라도 여유를 가지는 것이 옳겠다. 짧은 시간 먼 길을 돌아왔다.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중요하지 않은 것의 구별을 소양으로 얻은 축적의 시간이었다. 몇 번의 경험과 반성으로 신념의 동요가 없다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 일거다.

높은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아래가 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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