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 말을 하면 더욱 그리운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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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 말을 하면 더욱 그리운 팔만대장경
  • 남해타임즈
  • 승인 2018.10.11 15:49
  • 호수 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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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판각지 순례여행을 다녀와서
임 종 욱
작가
진주교대 강사

이름도 요상한 태풍 `콩레이`가 꼬리를 내린 지난 7일 오후 2시, 고현면 면사무소 앞은 곧 다가올 설렘의 시간을 맞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어림짐작으로도 백 오십여 명은 훌쩍 넘을, 사람의 산이자 바다였다. 비바람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이날, 사람들은 왜 소망의 연꽃 송이를 가슴에 키우면서 모인 것일까?

고현면 일대가 나라의 위기를 부처의 가피력으로 이겨내고자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현장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소문이나 기대, 추측의 영역이 아니다. 많은 자료와 발굴 결과가 8백여 년 전 이 땅 사람들이, 옹골찬 판목에 부처와 고승이 나투셨던 말씀을 알알이 새겨 넣은 장소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날은 그 맑은 넋을 이은 후예들이 지난날의 성사(盛事)를 되새기고자 순례 길을 나서는 때였다.

일행들과 현장에 도착한 나 역시 바로 뜨거운 열기와 염원에 휩싸였다. 조약돌에서도 불성(佛性)이 두루 함을 아는 이들의 모임은 이래서 즐거웠다. 모두의 마음을 모아 읽어나간 발원문에서 나는 모임의 참된 의미를 엿보았다.

"오늘 우리는 팔만대장경만 기리기 위해 모이지 않았습니다. 세상 모든 성인들의 말씀을 담은 성경과 불경, 코란의 정신까지 함께 찬양해서 인류가 화합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모였습니다. 그것이 우리 선조들이 피와 땀을 흘리면서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궁극의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발원문은, 종교는 갈등과 폭압을 티끌처럼 날려버리고 사람들을 편히 살게 하는 깨달음의 따뜻한 그늘임을 선언하는 중이었다. 신록이 겨워 결실로 달려가는 그날, 우리들은 화방사 주지 승언 스님을 길라잡이로 모시고 순례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우리들의 발길은 대장경의 숨결이 오롯하게 숨 쉬는 아름다운 땅을 하나하나 톺아 나갔다. 대사의 언덕을 올라 `한짓골`의 흔적을 살폈고, 관당 마을과 안탑골의 옛 자취도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 고현의 들판을 지나, 대장경 판각의 요람인 정림사와 백련암, 강월암 터가 누운 삼봉산 허리께까지 걸음을 재촉했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은 판각에 나섰던 각수(刻手)들의 보람으로 스몄고, 숲에서 들리는 새소리는 낭랑히 경전을 읊던 중생들의 `붉은 마음[丹心]`으로 날아올랐다.

순례는 선원마을 기슭, 판각의 얼이 깃든 발굴의 터전에서 회향(廻向)되었다. 대장경 성역화 사업이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희소식이며, 머지않아 이 골짜기와 들판을 둥지 삼아 `대장경기념관`과 `동서기록문화교류단지`가 조성되리라는 낭보도 전해졌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은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기에, 이날의 순례는 맑은 샘물 아래 군더더기로 남았던 미혹의 앙금마저 씻어낸, 뜻깊은 행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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