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남해의 스티브 잡스, 장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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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남해의 스티브 잡스, 장희종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8.10.25 09:45
  • 호수 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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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도 껄껄 웃고 갈 컴퓨터 사랑꾼 83세 장희종 어르신

보유한 컴퓨터만 4대ㆍ듀얼 모니터로 풀-가동, 새벽 눈 뜨자마자 컴퓨터
어르신을 위한 정보화 교육자료 책으로, 편집부터 발간까지 자력으로 완성

어르신이 어르신을 위한 컴퓨터 교육책을 냈다고 하길래, 솔직히 그런가 보다 했었다. 그러다 실제 ‘어르신을 위한 정보화 교육자료’라는 이름의 206페이지 분량의 책을 집어 든 순간, 그런가 보다 했던 안일한 내 태도가 무척이나 부끄러워졌다. 일단은 만나 뵈야겠다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컴퓨터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산다는 어르신의 말씀. 스스로를 컴퓨터에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장희종 어르신은 나로 하여금 내친김에 실례를 무릅쓰고 어르신의 댁까지 쳐들어가는 용기를 내게 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컴퓨터만 4대. 게다가 모두 듀얼 모니터. 3테라 용량의 외장하드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뿐이랴, 곳곳엔 오래전부터 모으고 모은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 정품CD들이 신줏단지처럼 모셔져 있었다. 작은 방안 빼곡한 자료들에 넋이 빠져 눈을 돌리려 치면 어르신이 가져온 것은 컴퓨터로 작업해 온 각종 문서와 집안 족보들, 거기에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실 때 자필로 썼던 행정일지까지 얼떨결에 보게 되는 순간, 일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 어르신. 컴퓨터에 푹 빠져 사는 장희종 어르신의 위대한 오늘을 만난 순간이었다.


장희종, 1933년생. 우리 나이로는 현재 83세.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중학교도 겨우겨우 다닐 수 있었던 2대 독자로 태어난 본인에게 ‘왜놈 글자 말고 천자문부터 배워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으로 7살 때 이미 천자문을 다 외우셨단다. 천자문 덕에 가방끈은 짧았어도 군대에서부터 명필가로 소문이 나 차출돼 직장생활도 학교 행정직으로만 25년 근속을 하셨단다.


그랬던 그에게 천자문에 버금가는 새로운 세상은 바로 컴퓨터와의 만남. 1983년을 잊지 못하셨다. 남해상고(현 남해정보고) 서무과장 할 때였던 1983년도, 처음 컴퓨터 들어왔을 그 무렵 전산실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컴퓨터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재미나고 신기한 세계였다고. 그때부터 컴퓨터 사랑에 빠진 장희종 어르신은 현재 비영리민간단체인 컴퓨터사랑동아리(이하 컴사동)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새벽 3시 30분에 눈을 떠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컴퓨터를 켜는 일.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컴퓨터 속 인터넷 세상을 산책하고 나서는 한 시간 남짓 오동배기 일대를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연 후에 컴사동의 공간이 있는 남해문화원에 가신다고.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어르신들을 위해 컴퓨터를 가르쳐 주는 장희종 어르신. 그렇게 하고 나면 주요한 하루 일정을 마치는 셈이라고 하셨다. 장희종 어르신은 “나이 들면 3식이(집에서 식사를 3번 한다는 뜻)라고들 하잖아, 난 그래도 2식이인 셈이야. 매일 오전에 나와서 컴퓨터로 주고받다가 점심 먹고 집에 들어가거든”하고 웃으셨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만나는 내내 휴대전화가 계속 울렸다. 여기저기서 어르신을 찾는 전화였다.

자료 입력부터 편집까지, 사진 작업에 동영상 제작까지 컴퓨터로 못 하는 일이 없는 컴퓨터 박사인데다 2016년에는 인동장씨종친회 대동보 19권을 편집, 제작해 남해도서관에 기증까지 했을 정도니 인기가 많은 건 당연지사다. 인동장씨 대동보는 CD 작업까지 마무리해서 전자족보로도 제작해두셨다고 하니 입이 딱 벌어졌다.

장희종 어르신이 직접 제작한 가승보와 달력, 직장 내 작업일지

몇 년에 걸친 긴 봉사로도 모자라 이웃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무려 다섯 집의 가승보 또한 무료로 제작해드렸다고 하니 정말 그 재주에 한번, 그 봉사심에 두 번 놀라게 된다. 3년 전 척추를 다친 이후로는 오래 앉아 있는 게 고역이라는 장희종 어르신. 그러나 늙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빛의 속도로 바뀌는 현 시대에 노인들이 컴퓨터를 못해 인터넷 뱅킹도 못하고 메일 확인도, 심지어 카톡으로 사진전송도 못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파 만들게 된 것이 이번 책자였다고 한다.

본인 눈 감을 때 컴퓨터를 같이 묻어달라고 할 정도로 컴퓨터 사랑에 푹 빠진 장희종 어르신은 4남매 잘 키워내고 이제는 좀 편히 지내셔도 될 법한데 여전히 해야 할 일로 곰곰이셨다. 어르신께서는 “그동안 다른 이들의 대소사를 돕느라 정작 내 기록을 전혀 정리 못했네. 이제라도 건강만 허락해준다면, 여기 보게나. 이 많은 기록들을 정리해서 회고록을 하나 만들어 놓고 가는 게 마지막 바램이라네”하고 말씀하셨다.


사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반듯하게 기록한 공책과 자료를 보니 단정하고 꼿꼿한 필체에서 어르신의 삶의 태도가 보이는 듯해 절로 숙연해졌다. ‘정직과 겸손, 노력’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오신 어르신의 삶이 소중한 기록으로 가닿을 수 있도록 부디 건강을 빌어본다.
강영자 기자 nhs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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