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해도 흔적을 남기면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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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해도 흔적을 남기면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록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8.11.22 11:35
  • 호수 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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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창고 거주 작가 5명의 기록책 `남해에 그림 그리러 왔어요①`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선정된 거주 작가 5명의 기록책 `남해에 그림 그리러 왔어요①`

 "돌창고프로젝트는 최선을 다할 기회를 얻지 못한 청년작가들의 작품활동공간과 전시공간을 제공해왔다. 그렇게 2년을 이어오다 여러 명의 작가가 남해에 거주하며 지역 전체를 무대로 작업을 해나간다면 흥미진진한 작업들이 나오고 함께하는 힘이 생겨 더욱 재밌는 프로젝트들을 추진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전시 관람료만으로 작가들을 불러 함께 생활하기는 운영상 부담이었다. 다행히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2018 레지던스 프로그램` 사업에 선정돼 돌창고프로젝트가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여러 명의 작가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공개모집을 통해 김서진, 김정현, 윤혜진, 원정인, 이수민 다섯 명의 작가가 입주해 작업하고 오픈스튜디오, 청소년미술교육 등을 진행하며 살아왔다. 남해에서의 생활, 창작 참여의 과정을 매일 기록해 엮은 책, `남해에 그림 그리러 왔어요` 1호가 발간되었다"
 

돌창고 거주작가 5명의 모습. 이수민, 윤혜진, 김정현, 원정인, 김서진 작가와 돌창고프로젝트의 최승용 기획자, 김영호 대표

 돌창고프로젝트 기획자 최승용 씨의 소개다. 그의 소개처럼 5명의 개성 있는 작가의 `남해거주 기록기` 총 3권 연재 중 첫 권이 지난 10일에 발간되었다. 2017년 3월 출판등록을 마친 `3people(쓰리피플)`에서 낸 이 책은 다섯 작가가 이곳 남해에서 어떻게 `사그라들던 예술적 (혹은 삶의) 생명력을 다시 살찌워 가는지`를 보여주며 `서울이 아니면 우리는 안 되는 걸까?`를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의 예술 하는 단면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최승용 기획자는 다섯 작가들에게 당초 `생명력과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으나 작가들의 반발로 "기록만이 살아남는다"는 전제하에 "자유롭게 쓰되 성실하게 쓸 것"을 주문했고, 이 책은 다섯 작가의 작업 일지로서의 첫 결과물인 셈이다.

 작지만 단단한 이 작업일지에는 "작가란 작업을 따로 하기보다 좋은 취향을 갖고 자신의 삶을 사는 것. 마음과 자신의 고고학을 찾아야 하는 사람. 오늘 내가 여기 있었음을 알고 확인하고 느끼는 사람"이라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윤혜진 작가의 독백과 "인생에서 재미를 너무 빨리 없애버린 건 아닐까 싶다. 나중에 후회할지도. 하지만 후회 남는 강력한 재미보다, 아마도… 차분히 삶을 정돈하며 사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투명해지자. 그리고 날카로워지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자"고 다짐하는 이수민 작가의 결의 또한 엿볼 수 있다.

 그뿐인가. "오래된 이미지는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달이나 햇빛, 구름 등의 한결같은 이미지들은 사람들과 공유 가능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과거에는 한 이미지의 생명이 길었던 반면 지금은 갓 생산된 이미지조차 유통기한이 짧다. 세대를 아우를 수 없는 이미지들만이 계속해서 생산되고 또 금방 폐기 된다"는 원정인 작가의 성찰도 발견되며 "이제는 익숙해진 남해행 버스를 타면서 두고 온 것들의 무게 때문에 호흡이 어려웠다. 서울에 있는 누구 하나 스스로 살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친구도 부모님도 부모의 부모님도 타인에게 슬픔을 멈출 수 없이 주고, 받고 있었다"는 김정현 작가의 슬픔도 만져진다. 다섯 명의 거주 작가 중 유일한 남해인인 김서진 작가의 뜨거운 고백도 만날 수 있다.

 "(나는 지금) 또 다른 남해를 만나고 있고, 친구들은 서울 아닌 `남해`를 만나고 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과 자연에 대한 것, 대자연, 자연, 스며듦. 보이는 것들과 느끼는 것들, 자기 자신만으로 녹아든 것들을 빨리 보고 싶다. 나는 여전히 내 자신의 것, 보이는 것을 지켜나가려고도, 아니 변할 수도 있고 모르겠다.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산책 하고 싶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기록이기 이전에 청춘의 기록이기도 한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최승용 기획자의 `책`에 대한 애정이 다시금 콸콸콸 들리는 듯하다. 남해를 주제로 한 다양한 출판물이 더 많이 쏟아지기를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하며, 끝으로 이 책은 온라인 서점뿐만 아니라 남해의 보물 서점들인 `아마도 책방`, `책의 정원`, `은모래 책방`, `B급 상점`에서 더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는 소소한 정보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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