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흐르는 연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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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흐르는 연대를 위해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01.03 11:31
  • 호수 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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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보 름
남해여성회 사무차장
본지 칼럼니스트

거제에 사는 한 가족이 있다.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집회 등 연대가 필요한 자리마다 온 가족이 달려와 힘을 보탰다. 광화문이든 청와대든 구미든 남해든 아랑곳 않고 단 한 시간의 연대를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직접 연대하지 못하면 산처럼 무거운 정성으로 만든 연대 물품을 삽시간에 부쳐왔다. 그렇게 곳곳을 누비며 온 가족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가족의 가장인 신상기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조선지회장이 지난 11일 옥포조선소 한가운데 고공철탑에 올랐다. 오늘(27일)로 벌써 17일차. 신 지회장은 "불필요한 논쟁을 중단하고 현장의 요구를 받아 안아 지난 4년여 동안 회사를 믿고 수많은 고통을 견뎌낸 대우조선해양 원·하청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또한 "경영 상황이 호전되고 경영 성과와 수주를 자랑하면서도 현장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고, 채권단 핑계만 대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고 했다. 월급을 깎아 돌려주며 사측에 협조한 대가로 돌아온 건 재차 요구되는 희생뿐이었기 때문이다.

소식을 듣자마자 연대조직을 꾸렸다. 부천, 성주 소성리, 대구, 남해에서 소규모 인원이 모여 `노동자와 연대하는 작은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대우조선해양 고공농성 지지 연대 길거리 공연을 준비했다. 연대 구호가 담긴 현수막과 고공농성의 절실함을 발췌한 전단지를 급하게 마련했다. 소식을 듣고 연대 기금을 보내온 이들이 있어 어깨가 더 무거웠다. 

거제 옥포조선소 남문 앞에 도착해 신 지회장과 연대하는 비정규직지회의 도움으로 굳게 닫힌 철문을 넘어 바로 밑에서 올려다본 CC-2 철탑의 모습은 너무나 까마득했다. 마중 나온 신 지회장의 얼굴이 저 멀리서 희미했다. 그저 길거리에서 만나 연대의 연을 이었을 뿐 사실은 생판 남인 우리조차도 죽죽 눈물을 흘릴 만큼 막막하고 두려운 곳이었다.

지지 연대 공연의 목적은 단 하나. 빠른 시일 내에 사측과의 단체교섭을 마무리 짓고 신 지회장이 건강한 모습으로 내려오는 것. 신나게 제창할 수 있는 목록을 일부러 준비했다. 공연단 4명과 기꺼이 모인 거제 시민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을 다 합쳐도 소수였지만,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는 끝없는 퇴근 행렬 앞에서 우리는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고 소리쳤다. 

무겁지 말자, 가장 가볍게 저 굴뚝 위까지 누구보다 빠르게 다가가 보자, 하는 노래들을 고르고 골라 목청껏 노래했다. "같이 살자"고, "함께 하자"고,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고, 휴대폰 라이브방송 너머로 지켜보고 있을 신 지회장과 연대 공연단을 위해 울음을 참고 달려온 아내 분을 위해, 그 가족들을 위해, 결국은 우리 모두를 위해 최선을 다해 공연을 마무리했다. 

지역마다 곳곳에서 훈훈한 소식들이 쏟아지는 계절이다. 루게릭병으로 생사의 싸움을 시작한 친구를 위해 동기들이 마련한 투병기금 후원 자선공연 `타락打樂` 소식이 그렇고, 남해여성회 `사랑의 365 주머니산타`를 비롯해 전국의 수많은 단체들이 돌봄이 필요한 지역 내 가정에 봉사 방문 행사를 가졌다는 소식들까지.

그러나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기가 막힌 소식들에 가슴이 주저앉는 날들이기도 하다. 열악한 노동 현장에 묻힌 생때같은 이름들, 잘못된 시스템과 인재(人災)로 한줌의 울분이 되어버린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들, 함부로 잘라내고 손쉽게 이어붙이며 한없이 늘어나는 비정규직들, 작고 큰 전쟁 뒤에서 자본만 불려가는 국가 이기주의와 우월주의,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약한 이에게만 폭력을 휘두르는 사각지대의 종교집단들, 들불 같은 촛불의 힘으로 세운 권력을 이양받자마자 삽질과 헛발질만 해대는 뜨악한 정치가들, 쓰레기봉투처럼 쌓여가는 온갖 혐오들. 잊지 말라, 아무리 다짐하고 읍소해도 견고한 유리창들이 지배하는 이 사회는 여간해선 깨지지 않는 것일까. 가장 낮은 곳이 가장 큰 연대의 자리임을 깨닫게 되는 매서운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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