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듯 찾아온 남해, 이곳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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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듯 찾아온 남해, 이곳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9.07.15 18:04
  • 호수 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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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박향진 다큐멘터리 감독
박향진 감독은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남해살이를 모색하는 중이다.

영화감독이자 청년주거운동 활동가
귀촌 청년들의 일상 촬영 중

 지난달 27일 기자는 남해무인도영화제 사전행사 `청년 오픈테이블`이 열리는 문화공동체 `꽃밭`을 찾았다. 남해살이 하는 청년들이 모인다기에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그곳에서 박향진(30·남면 양지) 감독을 만났다.
 박 감독은 다큐멘터리 룗도망치는 것은 비겁하지만 도움이 된다룘(2008)를 연출했다. 서울로 간 지 10년 만에 그곳 친구들과 함께 고향인 남해로 돌아오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또 한 가지 알게 된 사실. 그는 청년주거문제 해결과 주거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의 활동가이기도 하다. 서울살이 10년이 어땠을지 조금은 짐작된다.
 영화에서 그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서울을 떠나려는 것일까? 진짜 서울을 떠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그가 서울을 떠날 때 던졌던 질문의 답을 찾았을지 궁금해졌다. 다시 그를 만났다.  
 

남해무인도영화제 사전행사 `청년 오픈테이블`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박 감독.

남해가 고향인데 언제 내려왔나 ^ 남면 양지마을이 고향이다. 남해서 20년, 서울서 10년 살다가 2018년 2월에 친구들과 함께 남해로 왔다. 지금 부모님,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동생 박태현(27)이 먼저 내려왔다. 그는 카페 남해창고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일주일 중 사나흘은 서울에서 지내며 민달팽이유니온 활동을 하고 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무슨 단체인지 소개해달라 ^ 2011년에 결성돼 청년 주거문제 해결과 주거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지금은 청년주거아카데미를 준비한다. 청년을 대상으로 주거권의 역사, 주거권 관련 정책 등 전반적인 주거 이슈를 교육한다. 주거상담이나 캠페인, 제도개선 활동이 주된 활동이다.
 
남해에서는 어떻게 지내나 ^ 남해로 오기 전 카카카 친구들과 함께 영화촬영을 했고 함께 내려왔다. 그 과정을 찍었고, 그 이후 과정을 담고 싶어서 친구들의 일상과 활동을 카메라로 쫓고 있다. 3월에 한차례 마무리했고 내년 말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부모님이 마늘, 시금치 농사를 하는데 서툴지만 농사일도 돕는다. 요즘 새롭게 남해를 알아가면서 낯섦과 설렘이 느껴진다.
 
갑자기 왜 남해로 왔나 ^ 열심히 살았지만 지치는 시간들이었다. 사회활동을 주로 했다. 계속 시간에 쫓기면서 사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나 돌이켜보게 됐다. 또 서울살이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너무 이상하고 불합리한 게, 열심히 일하지만 저임금을 받고 월세는 또 너무 나간다. 여기를 떠나지 않으면 이 상황을 개선할 수 없겠다 싶었다. 또 `그런 환경에 계속 있는 건 이 사회가 그 상황을 유지하게 하는 거다`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남해살이에는 문제가 없나 ^ 정착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것도 사실 어려운 문제다. 일자리와 주거 등 남해에 정착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서울 생활에 지치다보니 남해에서의 삶이 어떤 식의 탈출구가 되기도 한다.
 
`도시탈출` 다큐멘터리 룗도망치는 것은 비겁하지만 도움이 된다룘는 제목이 흥미롭다 ^ 2017년 11월부터 찍은 다큐인데, 같이 책모임하는 한 언니가 게스트하우스 이름으로 드라마 제목을 제안했다.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였다. 영화를 찍으면서 `우리가 가는 게 도망일까, 이게 도망이라면 이런 사회에서는 도망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비겁한 것일 수 있지만 나 스스로 부끄러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을 `비겁하지만`으로 바꿔 써봤다.
 
영화 작업은 계속 할 것인가 ^ 독립다큐 작업은 재밌고 의미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가능할까 싶다.
 
남해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건 ^ 예전에 우리 집 고양이가 집 밖을 돌아다니다가 아픈 채 돌아왔다. 얼굴이 온통 침범벅이 되어 들어왔는데 엄마가 아프니까 집으로 찾아온다고 말씀하시더라. 내게 남해는 그런 곳, 마음의 쉼터가 될 수 있는 곳이다.
 분명 도시보다 열악한 곳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다른 기회가 있다. 서울에 문화가 많다고는 하지만 문화산업이 발달한 곳이지 문화가 있는 곳인가 의문이 든다. 오히려 지역이 영감과 감상을 주고 어떤 식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싶다. 진짜 창작활동을 하고 싶으면 여기 있는 문화를 잘 만들어보면 좋겠다.
 농사짓는 일도 꽤 좋다. 그게 살 만한 정도의 수익이 나면 더 좋겠다. 고된 노동 뒤에 말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며 사는 건 아니라고 본다. 농사짓는 일이 멋진 일, 스스로에게 즐거울 수 있는 일이 되면 좋겠다.
 
지역에서 그런 일을 지원하면 좋은데 ^ 혼자 용기 낸다고 해서 안정적인 삶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내가 이곳에서 미래를 그리는 게 괜찮을까. 청년 개개인의 삶을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기저에는 항상 남해에서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남해라는 공간이, 남해 사람들이 너무 좋고 애정이 있는데 그 애정이라는 게 내가 실제로 뭔가를 실행할 수 있을 정도의 애정일지 아직 확신이 없다.

 김수연 기자 nhs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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