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의 안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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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의 안테나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09.19 12:27
  • 호수 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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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5 │ 碧松 감충효 시인/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시인 / 칼럼니스트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생활할지라도 심령의 안테나는 항상 조상의 뼈가 묻히고 자기의 태를 묻은 고향땅을 향해 뻗혀 있기 마련이며 틈만 나면 고향에서 오는 소식에 주파수를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일은 내 고향이 잘 되기를 비는 한결같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얼마 전 살은 탈락되고 백골만 남은 노간주나무(杜松)에 도연명(陶淵明)의 귀원전거(歸園田居) 일부분과 귀거래사(歸去來辭) 전문을 새기며 나름대로의 전원생활을 꿈꾸었던 일이 있었다.
고향 읍성에서 어릴 적 재래시장 동쪽의 동문안이라 부르던 곳에서 강진바다 쪽을 내려오는 길과 남문밖 쪽에서 봉천을 따라 강진바다로 내려온 길이 만나는 삼각지점 즉, 죽산 마을의 끝 묏부리 동뫼입구에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전답에 제법 많은 돈을 들여 복토하여 매실나무, 대봉 감나무, 땅두릅, 석류나무, 무화과나무, 영산홍, 철쭉, 회양목 등을 심고 울타리는 치톤피드를 가장 많이 뿜어내는 편백나무를 줄지어 심어 사이사이에 야생동백나무를 심었다.
동백나무사이의 공간에는 꽃 잔디로 장식했다. 운치를 좀 살리느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죽산(竹山)마을의 상징인 대나무도 몇 뿌리 심고 언덕에는 참마 씨를 뿌렸으며 고급 요리에 쓰이는 다년생 채소 양하를 심기도 했다. 그 당시 약초로 한창 인기를 누리던 어성초도 많이 심었다. 그리고 봄, 여름 관리를 위해 건설업 하는 후배에게 부탁해 컨테이너 하우스를 설치할 장소도 마련했다.
그 해 봄에 비가 너무 자주 내려 문제가 생겼다. 배수가 잘 안 되어 과일 나무들이 자라지를 않고 잡초만 무성하게 되니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배수관리가 필요한 시기에 내가 그 현장에 없었다는 것이고 천 평 중 일부분만 시도해서 연차적으로 실천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해본다. 어쨌거나 나의 귀거래사 따라하기(?)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이미 묘목은 사 놓은 거라 반신반의 하면서 심을 수밖에 없었고 그 해 장마철에 천리 밖 먼 곳에서 안이하게 대처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전원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현장에 살아야 하는데 나는 그것을 못하고 과일나무부터 심은 것이다. 현장에 있어서 비가 올 때마다 도랑을 파서 배수를 해주었다라면 괜찮았을 것이다. 묘목 값도 제법 들었고 복토비도 많이 투자했는데 이렇게 되니 의욕이 생길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고 누군가 경작할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데다가 그냥 두면 황무지가 될 가능성이 커 2년 전에 매각을 하고 말았다.
할아버지 대부터 내려온 농토로 부모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필자자신 망향의 끈이 이어져 있는 상징적인 땅을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어릴 적 그 농토 주변은 나의 추억이 너무나 많이 깃든 곳이다.
하마정 들의 작은 도랑물들은 결국 봉천의 큰물과 합쳐지는 이곳으로 모이기에 그 물길을 통하여 강진바다로 산란하려 내려가는 참게와 뱀장어의 대이동은 폭우 쏟아지고 냇물이 불어나는 시점에 절정을 이룬다.
아버님과 함께 대발을 치고 기다리면 참게는 필연적으로 대발로 기어오르게 되고 나는 참게들을 망태에 신나게 주워 담았다. 집으로 돌아와 발에 걸린 팔뚝만한 뱀장어 몇 마리 구워 먹으며 이웃들과 즐겁게 담소하던 그런 일들을 지금에 와서 되새기는 일은 룗나의 고향 나의 삶룘에서 크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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