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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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릇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10.21 15:34
  • 호수 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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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본지 칼럼니스트
김 정 화
본지 칼럼니스트

말은 밖으로 나오면 내 상전이 된다. 입안에 있을 땐 내 것이지만 입 밖을 떠나면 나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나 입 밖으로 나온 말이나 다를 것이 없다. 여전히 어려운 것도 말이고 미안한 마음에 후회스러운 것도 말이다. 말과 관련하여 낮이 뜨거워졌던 일을 생각하면 말은 내 상전이 틀림없다.
굳이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 다르게 표현해야 할 이야기를 격에 맞게 하지 못했던 일로 부끄러운 마음을 느꼈던 적도 많다. 삶의 지혜는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말하는 데서 비롯됨에도 지나고 나면 모자람이 남는다.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었으면 좋았건만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한 것이 대부분의 화근이었다.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사람의 관점을 살피지 못하면 그건 대화가 아니라 독백인데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함을 가지고 평온하듯 유연하게 말하는 사람을 더러 본다. 휘몰아치는 감정에 당황스럽고 민망할 법 한데도 깊은 자존감에서 나오는 언어의 뿌리가 탄탄하다. 말을 담아내는 그릇이 넉넉한 사람이고 말 그릇이 깊은 사람이다.
말은 감정의 표현이다.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상대의 온갖 도발에도 동요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목계` 같은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그 깊이를 배우고 싶고 부러움도 크다. 지혜가 부족해서 말의 출로를 찾느라 스스로 애를 태웠던 기억은 감정의 남용 때문이었다. 마음을 절제하지 못해 특정한 지점에서 말을 거두어들이려고 애썼던 민망함은 또 어쩔 것인가.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신에게 관대했던 말과 행동의 서ㅤㅌㅜㄻ은 부끄러운 기억으로 다시 나를 가르치고 있다. 감정이 몰아쳐도 내면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아야 하고 대상을 탓하기 전에 내 허물부터 먼저 살펴야 하는데 그것이 많이 부족했다.
말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고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는 것이다. 내가 한 말은 내가 없는 순간에도 사람들 사이로 새롭게 창조되어 떠다닌다니 이 얼마나 두렵고 경계해야 하는 일인가. 남의 말에 덩달아 춤추기 전에 내가 떳떳한지 족히 세 번은 따져봐야 근심의 양도 줄어든다.
말의 궤적을 틈틈이 점검하고 바로 잡아나가야 상처를 안긴 말들로 괴로움에 허우적대는 일이 없게 된다. 사물의 형체가 굽으면 그림자가 굽고 형체가 곧으면 그림자도 바르다. 말도 매한가지다. 굴절된 언어에 휘둘리는 일을 겪지 않으려면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마음을 깨끗이 버려야 한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히면 헛된 감정에 휘둘린 비뚤어진 언어가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다.
품격과 수준을 의미하는 한자`품(品)`의 구조를 보면 입`구(口)`가 세 개 모여 이루어져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는 뜻이다. `언위심성`이라 했다. 말은 마음의 소리이고 사람은 자신의 품만큼 말을 채운다. 말한 뒤에 부끄러움이 덜하고 후회가 생기지 않으려면 말 그릇을 깊게 만들어야 한다. 그 그릇에 사람의 향기를 담아 아픔도 길이 되는 언어로 채워야 한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사람의 향기는 그 사람의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니 보잘것없는 경험으로 쉽게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하는 말은 내 삶의 표본이 된다. 보이는 것만 말하면 말의 노예가 되지만 생각하는 것을 말하면 말의 주인이 된다. 말은 인간의 감정에 공헌하는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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