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오래된 미래, 남해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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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오래된 미래, 남해대교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11.08 16:45
  • 호수 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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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12 │공명수 대진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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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대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너무 많다. 남해대교를 준공한 1973년, 그 당시에 필자는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개통식과 처음 남해대교를 건널 때의 그 벅찬 감정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요즘에 와서도 고향에 내려가는 길에 남해대교를 건널 때면 언제나 회상의 감정으로 잠시 가슴이 멎어지는 전율을 느끼곤 한다. 대관절, 남해대교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나의 심장을 후벼 파는 것일까?  몇 번이고 곱씹어 보아도 여기에 숨 쉬고 있는 나의 정체성, 아니, 우리들의 정체성 이외에는 그 해답을 찾을 길 없다.
남해대교는 우리가 겪어온 삶의 산증인과 다름없다. 이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나룻배나 도선을 타야 했고, 부산까지는 최소한 7시간 정도 배를 타고 갖은 고생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남해대교가 건설된 후부터는 우리는 이런 고생하지 않고 전국을 마음껏 누빌 수 있었기에 우리 지역이 외딴 섬이라는 것을 완전히 잊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동안 남해인들이 이 다리를 징검다리 삼아 부산, 서울, 그리고 세계를 향해 무한히 꿈꾸며 도전하고 웅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남해대교는 우리에게는 꿈의 다리임에 틀림없다. 여기에다 이 다리로 인해 우리 고장에 육지의 물질문명이 빠른 속도로 파급되면서 삶의 편의성과 효율성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남해대교는 문명의 징검다리였다.
하지만, 남해대교는 우리에게 나쁜 영향도 적잖게 끼쳤다. 남해는 본래부터 한려수도 남단에 위치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지역이다. 청정 자연환경 못지않게 남해인들의 심성 또한 외부인들의 손길에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상상 속에서나마 애써 간직하고 싶어 하는 그런 에덴의 모습을 그 때, 그곳 남해의 그 어디에서나 찾아 볼 수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1973년 남해대교의 준공을 시작으로 우리의 터전이 문명화되면서부터 천혜의 자연환경이 훼손되었고, 남해인들의 순수한 심성마저도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요즘 어떤 이들은 "남해인들의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듣기 거북한 말을 할 정도이다. 이렇게 보면 남해대교는 환경오염 및 넉넉한 인심을 잃어버리게 한 요인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의 삶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남해대교는 이제 노후화되어 자신의 무거운 역할과 기능을, 지난 2018년에 준공한 노량대교에 물려주었다. 개통된 지 45년이 지난 지금, 남해대교의 쓸쓸한 퇴장을 바라보면서 후기산업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그 뒷맛이 개운치 않다. 너무나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기계문명 사회에서 우리는 언제든 교체 가능한 부속품에 불과한 존재라는 서글픈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우리네의 정체성이 간직된 남해대교가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철거되거나 잘 관리되지 않고 보존되지 않아 보기 싫은 흉물로 변모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노파심이다. 지금 남해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우리의 기억과 흔적이 묻어 있는 남해만의 고유한 장소들이 사라진 곳이 많다. 지금의 시대는 옛 것이 자산이 되고 미래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이다. 부산 같은 남해, 서울 같은 남해가 아니라, 남해다운 남해를 가꾸는 것이 남해의 경쟁력이다. 남해에 오래 보존된 것들이 남해의 오래된 미래이다. 앞으로 남해대교의 지속 가능한 관리는 남해의 오래된 미래를 다지는 첫 걸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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