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노을처럼 아름답게 천천히 걸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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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노을처럼 아름답게 천천히 걸어가고 싶습니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11.22 17:05
  • 호수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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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을 맞이하면서

  저와 좋은 연을 이어 이 자리를 같이 하게 되어 고맙고 감사합니다. 가까이에서 또는 멀리서 저와 연을 가지신 분들께서 이 자리를 같이 하지 못해서 죄송하기도 합니다.
80. 80이 어떤 나입니까? 미움 받을 나입니다. 늙어가는 길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기도 합니다. 무엇하나 처음 아닌 길은 없지만 늙어가는 이 길은 몸과 마음도 같지 않고 방향감각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절할 때도 많습니다. 때론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멍하니 허공만 바라 볼 때도 있습니다.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 적 처음 길은 호기심과 희망이 있었고 젊어서의 처음 길은 설렘으로 무서울 게 없었는데 처음 늙어가는 이 길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어디 기대고 싶을 때가 절실하고 애틋한 친구가 그리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도 가다보면 `혹시나 가슴 뛰는 일이 없을까`하고 두리번거리며 찾아도 볼 때도 있습니다. 지나간 길 보다 앞길이 짧다는 걸 알기에 한발 한발 더디게 걸으면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아쉬워도 발자국 뒤에 새겨지는 뒷모습만은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하면서 황혼길을 천천히 걸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파의 비바람에 모난 곳은 전부 마모되어 타원형이 되어 내리막길이라 잘 굴러 갈 겁니다. 아무리 천천히 갈려고 해도 어디하나 걸리는 데가 없으니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시속80키로로 빠르게 굴러가겠지요.
그런데 노인이 되면 왜 지팡이를 집고 가는지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빨리 굴러가지 않고 천천히 걸으려고 지팡이를 집는 것을 저는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꽃보다 곱다는 단풍처럼 해돋이 못지 않는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게 천천히 걸어가고 싶습니다.
오늘도 웃음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합시오.
 
※ 이 글은 올해 팔순을 맞이한 이동면 석평마을 박호평 어르신이 팔순잔치에서 한 인사말을 강광표 동남해농협 상임이사가 박호평 어르신의 동의를 얻어 본지에 보내 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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