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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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의 싸움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11.22 17:21
  • 호수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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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신혼시절 주방 장식장과 싱크대의 그릇들은 종류가 적어 서로의 역할에 충실했다. 때로는 냄비가 무침 그릇을 대신해 콩나물을 버무렸고 어떤 날은 국그릇이 커피잔을 대신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가족도 늘어나고 음식도 다양화되면서 주방 그릇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주인의 재력이 늘자 모양과 디자인까지 찾게 돼 늘어난 식기들은 싱크대와 서랍장에 쌓여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쓰이던 그릇들은 방치되는 일들이 생겼고 서로 음식을 담당하겠다고 다툼이 발생했다.
다툼의 시작은 그릇크기로 시작됐다. 많은 양의 음식을 담기 위해선 우선 크기와 무게가 중요하다 다퉜는데 가볍고 큰 플라스틱 용기들이 편리함을 앞세워 우위를 점했다. 뒤질세라 스테인리스 소재는 플라스틱이 깨지기 쉬운 소재라며 자신들의 우위를 주장했고 유리그릇들은 우아함과 청결함을 내세우며 최고의 그릇이라 주장했다. 그렇게 재질별로 파벌을 이뤄 다퉜고 급기야 같은 파벌마저도 크기와 무늬별로 나눠 서로 자기만 중요하다 다퉜다.
그릇이 다양해진 만큼 조리법도 다양해지고 음식을 익히는 방법도 바뀌었다. 아궁이 시절, 불 위에는 항시 가마솥이 있어 국과 밥을 했기에 다른 그릇들은 불 위에 올려지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아궁이에서 연탄으로 바뀌고 가스레인지로 교체되며 가마솥은 사라지고 다양한 그릇들이 직접 화기를 맞이해야 했다. 고온으로 구워지지 않은 유리는 깨졌고 플라스틱은 전자레인지에서 녹았다. 그렇게 깨지고 녹고 휘어진 후에야 그릇들은 크기보다 재질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서로의 가치를 알게 됐다.
우리도 사회생활 중 중요한 위치를 맡길 때나 지도자를 선출할 때 인물의 그릇 크기를 중점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인물의 그릇 크기만 보고 어울리지 않는 중책을 맡기고 실망하거나 후회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누구 할 것 없이 본인의 그릇 크기에만 치중해 이루고 있는 재질을 잊고 불에 올려져 낭패를 당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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