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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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의 추억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12.19 16:18
  • 호수 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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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 숙본지 칼럼니스트
이 현 숙
본지 칼럼니스트

학동기와 청소년기는 활발한 신체 활동이 필요한 시기인 만큼 공부 못지않게 운동과 놀이가 중요하다. 경험칙을 말하자면 잘 놀아야 공부도 잘한다.
요즘은 학교운동장이나 동네놀이터에서 아이들을 구경하기 힘들다. 집과 학교와 학원을 뱅뱅 도는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빼곡한 학원 스케줄에 치여 놀 틈이 없기 때문이다. 짬이 나더라도 혼자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에 빠지기 일쑤이다. 몸과 마음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학창시절이 이렇듯 무미건조하면 성인이 되었을 때 머릿속에 남는 기억이라고는 `책상의 추억`이 전부이지 않을까 안타깝다.


예전 아이들은 노는 데 다들 일가견이 있었다. 특히 시골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사계절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여름 한낮에는 개울에서 가재를 잡거나 헤엄을 치고, 달밤에는 친구네 밭에서 잠복하며 참외나 수박을 서리했다. 겨울에는 쥐불놀이·팽이치기·자치기·연날리기·제기차기·새총놀이·토끼몰이에 여념이 없었다. "배 꺼질라, 뛰지 말거라." 어른들의 신신부탁도 들로 산으로 돌아치는 아이들을 막지 못했다. 서울 아이들도 이에 질세라 술래잡기·땅따먹기·다방구·비석치기·구슬치기·사방치기·공기놀이·오자미놀이·단체줄넘기·가마타기·딱지치기·고무줄놀이에 신바람이 났다. 놀거리는 많고 하루해는 짧았다.


시대·지역·연령·성별에 따라 놀이의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또래들이 한 공간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놀이문화의 의미는 충분했다. 여럿이 모이면 뭘 해도 신나고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즐겁다. 한여름 땡볕에도 노는 데 정신 팔려 더운 줄 몰랐고, 볼 빨간 아이들에게는 살 에이는 겨울바람도 마파람이나 갈바람에 불과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부리나케 집밖으로 나가면 이미 몇몇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놀잇감을 찾아 골목을 어슬렁대고 있었다. 머릿수가 하나둘 늘수록 활기가 넘쳐나던 골목은 땅거미가 내려앉는 즉시 정적에 휩싸였다. 내신 성적은 어떻든 놀이 스펙만큼은 풍부했던 아이들이다.


지난달 발표된 세계 22개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도 조사 결과 한국이 19위를 차지했다. 이는 필시 한국의 대학진학률이 압도적 세계 1위인 점과 무관하지 않다.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야 한다. 교육 시스템도 정비해야 하고 학부모의 교육관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기성세대가 만든 사회적 통념에 매몰된 삶, 붕어빵틀에서 나온 붕어빵처럼 획일적인 삶을 더 이상 자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공부머리가 있어 놀 때 놀면서도 공부에 소질을 보인다면 학업을 권장할 만하다. 하지만 공부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최선을 다하는데도 성과가 없다면 공부 재능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이때는 다른 방면의 숨겨진 재능을 탐색하여 그쪽에 집중하는 것이 타당하다. 모든 아이에게 천편일률적으로 공부만을 지시하면 개개인의 다양한 개성과 재능은 사장되고 만다. 자녀의 잠재능력을 발굴하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다. 학벌에 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다양한 존재가 지닌 다양한 가치를 널리 일깨우는 것은 사회의 책무이다.


몽골에는 어린 자녀에게 망아지 한 마리를 떼어주고 말을 돌보며 함께 성장토록 하는 풍습이 있다. 천방지축 날뛰는 망아지를 길들이기 위해 장정 서너 명이 달려들어 가까스로 말뚝에 비끄러매고 며칠 굶기면 탈진한 말이 그제야 다소곳해진다. 그런데 간혹 몽골 유목민의 이 방식을 자녀 교육에 적용하려는 부모들이 있다. 과연 `책상의 추억`만이 능사일까. 정답 없는 인생의 정답을 찾고 싶다면 각자 자유 의지에 따라 마음이 이끄는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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