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판각지 복원은 과거와 미래 잇는 남해관광의 새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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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판각지 복원은 과거와 미래 잇는 남해관광의 새 패러다임"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0.01.09 14:48
  • 호수 6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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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시대 `시대초대석 - 샘이 깊은 물` 1 | 김봉윤 고려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 부회장

대장경 판각에 일연선사의 문도 참여 밝힌 건 큰 성과
봉황스토리텔링으로 남해의 문화사상적 정체성 회복 모색

남해와 대장경에 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됐나 = 예전부터 불교철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 1991년에 남해에 내려와 지역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1993년 불교방송이 대장경 학술조사를 시작해 1994년 보고서를 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본격적으로 대장경에 관심을 갖고 뛰어들었다. 그게 20년 정도 됐다. 2015년에 남해에서 본격적으로 팔만대장경의 흔적을 찾고 대장경 판각지 조사를 체계적으로 하고 싶어 정의연 회장을 만났다. 혼자 개인적으로 할 게 아니라 모임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고 팔만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 부회장을 맡게 됐다. 


1993년 이후 정의연 선생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노력 덕분에 팔만대장경 연구에서 상당한 진척이 있었다. 특히 작년 심포지엄에서는 일연과 그 문도들에 대한 새로운 내용도 밝혀졌다.

이번 심포지엄의 성과를 정리한다면 = 일연과 대장경, 남해를 연결 지은 것이 제일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일연선사가 대장경 판각 당시에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관련 학자들은 알고 있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일연선사가 12년을 남해에 있으면서 「중편조동오위」라는 책을 썼다. 「중편조동오위」 일본 출간본을 제주도에서 가져와서 이번에 전시했다. 그 판본을 전시하고 서문에 나오는 `윤산`이라는 지명이 남해라는 걸 밝혔다. 「중편조동오위」가 일본에 건너가고 그것이 다시 제주도로 오게 된 일련의 과정, 그 책이 일연이 저서라는 걸 알림으로써 일연선사와 남해의 관계 속에서 대장경을 재조명하자는 취지였다. 이것이 알려져 불교방송 등 언론과 인터뷰도 했다. 특히 일연 문도들이 판각에 참여했다는 걸 밝혀낸 게 큰 성과다.

학술대회 이후 반응은 어땠나 = 금강대, 동국대, 원광대 등 불교계 대학과 도서관, 일연선사의 문중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로부터 연락이 왔고 이들에게 책과 자료집을 보내줬다. 불교방송과 신문 등 언론이 일연선사를 얘기하니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현대불교신문에서는 내 발표를 전면에 요약해서 냈다. 또 서울에 있는 전씨 대종회에서도 자료를 달라고 했다. 그분들은 일연을 자기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 일연선사가 경북 경산 출신이고 그쪽 지역에 전씨들이 많이 산다. 일연선사는 고려시대의 국사이자 「삼국유사」의 저자인데도 김씨인지 전씨인지 아직까지 성조차 확실하지 않다. 얼마 전에는 인각사가 있는 경북 군위군의 향토사연구소장이 일연선사의 남해 행적을 조사하러 남해로 온다는 연락이 왔다.

앞으로 집중해서 탐구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 일연선사가 남해 길상암과 봉소헌에서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249년 남해 정림사에 왔다`는 비석의 기록은 있지만 정림사나 길상암의 위치를 지금도 찾지 못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추정지로 선원사지가 정림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길상암의 위치는 차산 선소 일대일 가능성이 높다. 문헌과 지명을 통해 어느 정도 밝혀놨지만 구체적인 흔적들에 대한 조사가 앞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 연구의 로드맵을 밝혀달라 = 역사적인 문제를 연구하는 것은 세 가지 길이 함께 가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고고학적 조사다. 수백 년 전의 일이니까 당연히 그 흔적과 유물을 찾아서 증명해야 한다. 둘째, 연구자들이 모여 학술대회를 해야 한다. 유적이나 역사 문헌 등 기록들에 대해 공론의 장을 열어 연구의 토대를 만들고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셋째, 이 두 가지의 결과물을 가지고 지역민과 행정이 나서 복원작업을 해야 한다. 복원작업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현재의 우리가 할 일이다. 고고학적 조사와 공론의 장을 만들고 그 결과물을 가지고 눈에 보이는 복원사업을 통해 미래의 관광자원화, 교육 등과 연결해야 한다.

고려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의 계획은 = 남해군의 대장경판각지성역화 사업이 콘텐츠가 부족하고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경남도 심사에서 계속 보류되는 바람에 진행이 더디게 되고 있다. 다행히 도에서도 판각지와 해인사가 같은 경남에 있어서 올해에는 관련 사업예산을 책정해 놨다고 도의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장경판각지성역화 사업을 전문적으로 고민하는 분으로서 큰 그림을 그려본다면 = 관광상품의 개발과 관리운영도 생각해야 한다. 또한 대장경이라는 어려운 문제에 주민들이 접근하기가 쉬워야 한다. 공예, 서예, 한지, 목공, 서각 등과 연계된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염색, 금속공예, 옻칠공예까지 망라돼 있다. 남해는 한지와도 관련이 있다. 화방사 주변이 산닥나무(천연기념물 제152호) 자생지다. 한지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옛날 것들이 현대의 최첨단 산업과 연결이 되고 있다.


역사적 근거가 명확하니까 국가의 복원사업도 남해가 중심이 될 수 있다. 현재 문화재청이나 불교계에서 하고 있는 판각 작업들도 남해서 하기를 원하고 있다. 대장경 문화마을을 조성하자는 논의도 있으며, 남해군에서도 대형프로젝트로 설정하고 시간을 두고 추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남해는 과거에 유배지였고 현재도 단기 체류형 여행지는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문화마을 안에서 한달 살기를 하면서 명상 센터, 생활사 관련 공예 체험, 판각 목공예, 서예 등을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 요즘 미래산업으로 마음산업, 명상센터가 각광받고 있다. 남해군도 호도와 조도에 힐링센터 건립을 위해 민자유치를 진행하고 있다. 대기업들도 미래산업으로 주목하고 있다. 동양의 참선이나 명상, 특히 전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비파사나 명상 수련법 등이 그것이다. 대장경에 포함돼 있고 분사남해대장도감이라고 찍혀 있는 룗종경록룘이 바로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교과서다. 일심, 마음수행이 종경록의 핵심 내용이다. 그런 근거들이 다 있으므로 얼마든지 남해에서 그런 텍스트들을 가지고 수행센터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남해가 명상, 치유, 힐링의 섬이라는 내용이 대장경과 연관이 돼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남해를 어떤 주제를 가지고 개발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역사·문화와 연관지어 남해를 화합이라는 정서적, 사상적 주제를 정하고 개발해 나아가자는 것이다. 대장경은 불력으로 전쟁을 물리치고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모으려는 화합의 수단으로 출발했다. 또 남해의 위치가 영호남의 중간 지점으로서 동서화합을 역사 속에서 끄집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봉황과 관련한 풍수지리에 관심도 크다고 들었다 = 지명 풍수에 용과 봉황이 많이 등장하는데 일연을 연구하며 남해가 봉황이라는 지명풍수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왜 남해가 대장경 판각지로 선택됐을까, 거기에는 문화사상적 토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보각국사 일연, 진각국사 혜심을 찾게 됐다. 일연선사는 자신의 비문에 남해 정림사 주지로 왔다고 나와 있다. 일연선사가 남해서 쓴 책 속에 길상암과 봉소헌이라는 명칭이 나온다. 남해와 봉황의 지명을 찾다 보니 남해읍이 완전한 봉황 풍수로 돼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봉강산과 봉영산 일대, 특히 차산 선소 일대가 봉소헌이 있었으리라 주장하고 문헌 기록 속에서 차산 옛 지명이 윤산이라는 것을 찾아냈다. 

주로 어디를 조사했나 = 일연선사의 봉소헌을 찾다보니 고현 오곡과 오동을 중심으로 조사하게 됐다. 고현면 오곡은 당시 읍이 있던 곳과 가까이 있다. 삼봉산의 `봉`은 현재 `峯`(봉우리 봉)을 쓰는데 옛날에는 `鳳`(봉황 봉)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 세 마리의 봉황이 오곡마을의 전설 속에 나오는 것이다. 현재 오곡마을에 큰 회나무 고목이 있는데 그 아래 정자 이름이 봉명정이다. 옛날부터 봉명정과 재실인 봉명재가 있었다고 지역 어른들은 기억을 하고 있다. 남해읍에는 봉강산과 봉영산, 오동, 죽산이라는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남해읍이 당시 죽산으로 불렸다는 기록에 있다. 룗경상도속찬지리지룘에 보면 남해읍성을 죽산리로 이배했다고 나온다. 이를 확인하고 나서 남해읍성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남해고지도에 봉현마을이 나오고 남해 중심에 봉천이 있다. 이를 통해 남해읍의 풍수가 전부 봉황으로 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국의 봉황 얘기나 남해 전역의 봉황 지명도 다 조사했다. 봉황풍수를 택한 지역이 여러 군데 있지만 남해읍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봉황 지명으로 돼 있다.

이 발표 후에 관심을 보인 곳은 = 남해시대에 연재되는 기고문에 남해읍과 관련해 봉황이야기가 나오더라. 반가웠다. 얼마 전에 문화관광과 공무원들이 찾아와서 자료를 준 적이 있다. 봉황스토리텔링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남해읍 도시재생사업에도 적합한 주제다. 남해읍장에게도 제안을 했다. 봉황을 주제로 남해읍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지역의 상징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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