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상태바
가위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1.17 15:08
  • 호수 68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충국의 시대공감

 지난 시절에는 어느 가정할 것 없이 조그만 방에 옹기종기 가족이 모여 아랫목 구들에 발을 모으고,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겨울을 나던 시절이 있었다. 

 부모와 형제들이 한 방에 모여 지낼 때 어머니는 떨어진 옷가지와 양발을 긴 겨울밤을 벗 삼아 꿰맸다. 형의 옷을 물려받아 입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고 구멍 난 양발이 크게 부끄럽지 않았다. 백열등 아래 바늘귀를 바로 꿰지 못해 대신 꿰어주며 생색을 내던 한 일이 노안이 찾아온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 철없음에 무안함이 아들 눈이 좋다고 칭찬한 어머니의 너그러움에 괜히 부끄러워진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궁한 시절 어머니는 옷을 기우실 때 실을 이로 끊어내곤 하셨는데 지금은 흔한 가위마저 귀했기 때문일 것이다. 손톱깎이 대신 가위로 손톱을 깎고 종이를 자르던 가위가 요즘은 가정집 반짇고리가 아니라 주방에 두어 개씩 놓여있고 용도 또한 음식물 재료나 김치 등을 자르는데 더욱 많이 쓰이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식당에 비치된 가위의 사용에 당황하거나 재밌는 문화로 표현하는 것을 보면 일상 속에서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모양이다. 

 반찬이 부족하던 시절 어머니는 잘 익은 김치를 결대로 찢어 준비하는 것만으로 정성을 표했고 결대로 찢어놓은 김치는 아삭한 식감이 으뜸이었다. 김치뿐이 아니라 대부분 식자재와 생활용품은 결대로 찢는 것만으로 시각적 느낌을 살려 한층 맛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편리성으로 인해 김치를 가위로 자른 순간부터 모든 것이 규격화되고 정형화된다고 느끼는 것은 기우일까? 

 우리의 자식들은 결대로 찢어놓은 김치는 김장철 돼지 수육과 먹는 특별한 별식으로만 기억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결을 무시하고 가위로 자르며 사는 것이 익숙한 요즘 우리의 삶도 도덕적 순리와 제도의 형평성마저 가위를 든 사람의 의도대로 너무 쉽게 재단되는 것은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