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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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2.1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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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사극을 보면 등장인물의 지위나 성품을 수염으로 표현하곤 한다. 왕이나 장군 역할의 배우는 풍성한 수염에 근엄한 얼굴로, 간신이나 모사꾼은 몇 가닥 없는 빈약한 수염으로 자주 표현된다. 이렇듯 수염은 사람인상에 영향을 미치는데, 근현대사에 들어서 단발 이후 주변에서 기르는 이를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십여 년 전 수입해 판매하고픈 제품이 있어 일본을 자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수염을 기르는 것은 두건을 쓴 아랍인들이거나 외국의 유명배우 정도로 생각했는데, 일본에서는 수염 양에 상관없이 개성 있게 길러 멋을 내는 젊은이들을 보고 큰 호감을 느꼈다. 

 당시 나는 일본인은 한국인에 비해 왜소하고 못났다고 생각했는데 개성을 표현하는 것에서 우리보다 적극적이라고 느껴 언젠간 수염을 길러 보겠노라 마음먹었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큰 맘을 먹고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주변의 많은 분이 젊은 나이에 건방져 보일 수 있다며 만류도 했고 이미지가 좋아졌다며 권장하는 분들도 많았다.  

 만류하시는 분들 중 대면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가 어리니 자르는 게 좋겠다고 권하시기에 선입견으로 하시는 듯 귀에 쏙 들어오지 않았지만, 권하는 분들은 오랜 시간 찬찬히 훑어보시고는 권하시기에 좀 더 중히 들려 기르기로 작심했다. 

 매일 면도를 할 땐 잘 몰랐는데 기르기 시작하자 결이 너무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음에 깜짝 놀랐다. 우선 머리카락과 비슷한 굵기인데 너무 뻣뻣했고 자라는 결 또한 면도하는 습관에 따라 제각각 인지라 모양이 쉬이 잡히지 않았다. 특히 역결로 자라는 수염들이 있어 고민했는데 시간에 맡기기로 하고 다듬어 가며 기르기 시작했다. 일 년여쯤 시간이 흐르자 수염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결이 자연스러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일상생활에서도 면도하듯 획일적으로 처리해 눌러지는 개성은 없는지, 자주 발생하는 생채기는 없는지 돌아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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