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향록(思鄕錄)`과 `되돌아 본 南海 100年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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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록(思鄕錄)`과 `되돌아 본 南海 100年史`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3.13 15:32
  • 호수 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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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29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필자는 1월 16일자 본지의 <나의 고향, 나의 삶> 이야기(23), `무엇이 보물인가`에서 인문학적 관점으로 우리 고향에 묻혀있는 `남해읍성`과 `남해유배문학`을 보물섬 제일의 보물로 손꼽았다. 그 다음 보물로 남해의 역사 기록물을 찾아보기로 했지만 이 방면 책자나 기록의 보유가 부족하여 한평생 후학교육에 몸담으시고 향토사를 연구하시면서 많은 기록물을 남기신 김우영 선생님께서 남해신문 논단에 근대 고향의 역사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쓰신 글이 있어 발췌 인용하고자 한다.

 【조선조 때의 <남해현 읍지>만 하더라도 1832년~1833년간의 <경상도 읍지> 속에 <남해현 읍지>가 나오고 광무 3년(1899년)에 <남해군 읍지>와 <남해읍지> 두 권, 그리고 간지, 간자, 간년(刊地, 刊者, 刊年)이 모두 미상인 <남해현 읍지> 등 네 권의 읍지가 계속 간행됐고 약 40년 뒤인 1933년에 <한국지리 풍속지 총서>가 한 질 100권(101권부터 200권까지)으로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 전집물의 제145권과 146권 두 권이 `남해군 향토지(南海郡 鄕土誌)`란 이름으로 간행된 것이다. 물론 일제 강점기 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관 주도의 발간물로 순수한 개인 저서는 아니었다. 그 후 광복에 이어 6·25 한국전쟁을 겪고 난 후 다소 안정을 되찾게 된 1950년대 후반인 1958년 남해군은 <군지편찬위원회>를 만들어 <남해군지>를 발간하게 된다. 당시로는 모든 여건으로 보아 이루기 어려운 큰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군지는 사실 <재부남해향우회>에 의뢰하여 엮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36년의 세월이 흐른 1994년 7월, 지면 1264페이지의 방대한 <남해군지>를 편찬해 낸다. <남해군지편찬위원회를>를 두고 작고한 문신수 선생 등 6명의 집필위원을 위촉하여 약 1년여의 작업 기간을 두고 만들어낸 이 <남해군지>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여태까지의 읍지나 군지에 비해 획기적인 쾌거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순수한 개인 연구서가 아닌 지방관서가 주관하고 기획한 발간물이었다.】

 그 이후 2010년 정현태 군수 시절, 향토사학가인 김우영, 김종도, 정의연 씨가 집필위원이 돼 상권(950페이지), 하권(850페이지)으로 된 룗남해군지룘가 발간됐는데 남해군지편찬위원회의 이름으로 집필된 우리 고향의 선사시대부터 2008년 12월 말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고향의 인문학적 쾌거를 이룬 위대한 사업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관 주도의 룗남해군지룘가 아닌 개인이 집대성한 남해의 역사서 두 권을 필연코 짚고 넘어가야 한다. 향당(香塘) 이청기(李淸基) 선생의 룗사향록(思鄕錄)룘과 백천(白泉) 장대우(張大宇) 선생의 룗되돌아 본 남해 100년사룘가 그 것이다. 

 룗사향록(思鄕錄)룘(1973. 2. 1 향토문화연구회 발행)은 그 후 재경남해군향우회가 1994년 1월에 남해의 명승지를 컬러화보로 보완한 4판을 발행하였다.    
 
 룗되돌아 본 남해 100년사룘는 저자가 젊은 시절부터 방송국과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남해의 역사, 정치사, 교육, 문화, 사건사고, 남해인의 삶의 궤적을 정리하여 2008년 6월에 발간한 남해 100년의 역사서이다. 남해문화원장, 남해향토사연구회 운영위원, 남해역사연구회 고문 등을 역임하면서 남긴 논단과 칼럼은 진솔하며 소박하고 유려하다.

 룗사향록(思鄕錄)룘과 룗되돌아 본 南海 100年史룘 두 개의 보물 책자는 요즘 나의 서가에서 자주 내려와 마주 앉는다. 향당(香塘), 백천(白泉)님의 향기가 참으로 온유돈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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