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九雲夢)의 주제는 곧 일장춘몽(一場春夢)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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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九雲夢)의 주제는 곧 일장춘몽(一場春夢)이 아닌가?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3.19 16:28
  • 호수 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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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31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서포 김만중(1637~1692)은 송강 정 철, 고산 윤선도와 함께 한국 3대 고전 문학가다. 서포는 권모술수와 처세술에 능한 소인배를 싫어했고, 좀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숙종이 정비인 인현황후를 폐비시키고 장희빈을 세우려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남해에 유배당한다. 

 남해로 유배 온 김만중은 남해향교에 들러 룗주자어류룘 한 질을 빌려 룗주자찬요룘를 엮었다. 그리고 어머니 생신날인 9월 25일 어머니와 떨어져 불효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자탄하는 내용의 한시 7언 율시를 지어 바친다. 이듬해 어머니의 부고를 들은 서포 김만중은 룗선비정경부인행장룘과 룗서포만필룘을 완성하였다. 유배지에서 숙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쓴 것이 룗사씨남정기룘다. 

 룗구운몽룘은 어머니 윤씨를 위해 지은 국문학사상 불후의 명작으로 노도에서 완성한 걸로 되어있다. 그러나 1992년에 일본 천리대학에서 발견된 작자미상의 룗서포연보룘의 내용을 그대로 믿어 평안북도의 `선천설`이 정설인양 학계에 나돌고 있다. 

 그러나 박성재 한국유배문학연구소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는 논문 `김만중 소설과 남해 용문사`, `서포소설의 성립배경 연구`, 특히 최근에 발표하여 룗남해문학룘 22집에 전재한 `구운몽의 사상적 배경 고찰`을 통하여 룗구운몽룘의 남해 창작설을 되찾아 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학계는 작자 미상의 룗서포연보룘보다는 작품의 내용, 시대의 흐름, 수많은 남해 창작의 이론적 근거를 중시해 기존의 남해 창작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방면의 전문가가 아닌 필자지만 김만중이 육화공에게 육필로 쓴 편지의 답장 "인생은 진실로 한바탕 꿈인가 합니다"의 내용이 더 가슴에 와 닿음은 어쩔 수가 없다. 남해 적소에서 의미심장하게 기록한 `일장춘몽`의 뜻을 헤아린다면 어찌 구운몽의 남해 창작설을 쉽게 부인하랴. 

 귀양 온 첫해 지었으리라 짐작되는 오언절구 <남황(南荒)>은 충과 효로 삶을 이어온 서포 자신이지만 어지러운 세상에 대한 인연을 정리하면서 마지막 회오의 정을 나타낸 글이다. 아울러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왔음을 예감하면서 지은 비련의 노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시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눈물이 앞을 가려 몇 번이고 붓을 던진다. 이때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석 달 전이었고 살아 생 전 마지막 생신날에 쓴 서포 자신의 마지막 어머니에 대한 이별의 시이기도 해 후세 사람들은 이 시를 대하며 안타까움에 젖어들곤 한다. 

 망망대해 칠흑처럼 무거운 비탄과 절망 속에서 읊은 <재남해문양질배절도(在南海聞兩姪配絶島)>, 후세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이별시인 <남해적사고목죽림유감우심작시(南海謫舍古木竹林有感于心作詩)> 등 여러 편이 있으나 지면상 여기에 싣는 것은 생략한다. 

 노도에 위리안치 된 그 무거운 형벌이 말해주듯 그의 고뇌와 비애와 사상은 하늘을 울리고도 남았을 일이건만 끝내 그는 죽어서야 노도를 벗어날 수 있었다. 세상이 그를 버린 건지 그가 세상을 버린 건지 노도의 벼랑 끝 파도는 한 많은 유배객을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쉼 없이 노도의 가슴팍을 무섭게 때리더니 그 절규와 지성과 효심은 마침내 `노도 문학의 섬`으로 꽃을 피워 그를 버린 혼탁한 어느 왕조를 비웃기라도 하듯 후대들이 추앙하게 되었으니 님의 혼백은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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