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초교 터에는 경상우수영 관할 수군지 곡포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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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초교 터에는 경상우수영 관할 수군지 곡포보가 있었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5.1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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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사람들의 기억,
박물과 기록으로 만나다 22
룗일제 강점기 지적원도룘(1915)에 나타난 곡포보 위치.
[일제 강점기 지적원도](1915)에 나타난 곡포보 위치.

 곡포보는 현재 전 성남초등학교(현 길현미술관)에 위치한다. 곡포보는 북동쪽 호구산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구릉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지대 자체가 높은 북쪽과 동쪽은 지대를 살려서, 남쪽과 서쪽은 벽을 높게 쌓았다. 성은 거의 완전한 방형으로 만호진이 아니라 보라는 것을 반영하듯 크기가 작다.

 성은 폐교된 성남초등학교를 둘러싼 방형의 형태로 네 방향 벽 모두 일부만 확인된다. 남쪽 중앙에 미술관 출입구로 사용되는 문이 남문으로 추정된다. 

 곡포보는 룗신증동국여지승람룘에 의하면 만호진보다 위계가 낮은 권관이 설치된 보이다. 1522년 우고개보(牛古介堡)를 혁파할 때 곡포에 권관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세종 때의 기록(룗세종실록룘 64권, 세종 16년 4월 21일 무진)으로 보아 이미 곡포에 병선을 배치한 것을 알 수 있다. 룗신증동국여지승람룘에 의하면 남해현 남쪽 30리 지점에 있었다고 하며, 곡포보성은 석축으로 높이는 11척, 둘레는 9백 65척이라고 한다. 여지도서나 증보문헌비고의 기록도 동일하다. 룗1872 地方地圖룘, 룗南海島룘를 보면 곡포사창(曲浦社倉)이라고 표시되어 있고, 성이 그려져 있다.

 주변 지형은 현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남쪽에 선소도 그려져 있지 않다. 이것은 곡포보가`H`자 모양으로 생긴 남해섬에서 남해 쪽으로 뻗어 나온 양쪽 반도에 위치한 미조항진과 노량진(후 평산포진) 사이에 위치한다는 점과 연관된다. 즉 곡포보는 남해섬 좌우의 미조항진과 노량진이 해상에 방수를 담당하더라도 남해섬 자체가 넓어 생기는 방어 공백을 막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폐진 이후의 곡포보성의 모습은 1915년경 제작된 룗지적원도룘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곡포보성은 룗지적원도룘상에서 성곽의 모습은 그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밭과 밭 사이의 경계가 현재 성곽의 형태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치 등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동쪽 모서리 부근이 작은 밭으로 주변과 구분되어 있다.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에 의하면 남문에서 서편에 이르는 일부 구간 성벽은 과거부터 있던 성벽이라고 한다. 나머지 성터는 그 전에 대부분 무너져 있었으며, 오래전 학교를 건립할 때 전체적인 형태를 비슷하게 다시 쌓은 것이라고 한다. 곡포보성 일대에 수령 550년 된 높이 14m가 넘는 느티나무가 서 있는데, 과거 배를 매었던 나무라고 한다.

 조선시대 수군진은 당시 해양방어의 정수(精髓)로서 우리나라 해양 관방사에 대한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수군진 유적은 해상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항구 건설 등으로 많은 유적이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다행히 우리군은 경상우수영 관할 곡포와 상주포에 진성이 남아 있어 그 역사의 흔적을 기록해 본다.
 

곡포보 추정 남문지.
곡포보 추정 남문지.
곡포보 서벽.
곡포보 서벽.
곡포보 추정 우물지.
곡포보 추정 우물지.
곡포보의 배 정박과 관련된 느티나무(보호수).
곡포보의 배 정박과 관련된 느티나무(보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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