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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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기다리며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5.14 15:46
  • 호수 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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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현 재본지 칼럼니스트
장 현 재
본지 칼럼니스트

 싱그러운 오월의 햇살이 갓 돋아난 연둣빛 잎에 부딪혀 일렁인다. 하늘을 달리고 신록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이 빈 교정을 메운다. 찾는 이 없는 화단의 잔디는 영역을 넓혀가고 작약과 장미꽃의 어울림에 봄바람은 잠시 걸음을 멈춘다.

 코끝으로 전해지는 아카시아 꽃향기와 연보랏빛 오동나무꽃은 진종일 구구대는 산비둘기 울음소리와 함께 운동장을 채운다. 잠시 수그러지는가 싶었던 코로나19가 연휴를 지나며 들불처럼 번질 기세다. 다시 등교수업이 연기되었다. 포탄이 터지고 총성이 울리는 전쟁이 아닌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줄다리기에 학교는 아직도 동면 속에 있다.

 교직 생활 30년을 넘기며 다양한 일들이 있었지만, 3월 이후 지금까지 아이들을 대하지 못하는 온라인 개학은 처음이라 당황스럽다. 외부로 통하는 출입문마다 코로나19로 인한 출입 통제란 빨간 문구가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밀고 당기고 조잘거리며 달음박질해야 할 교실과 운동장은 긴 침묵속에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며칠 있으면 39주년 스승의 날이다. 텅 빈 교실에서 스승의 은혜 노래 한 구절도 들을 수 없다. 그래도 작년 5월엔 찐한 감동이 있었다. 스승의 날 오후였다. 학교 건물 사이 나이를 더한 느티나무 그늘에 봄바람을 맞으며 몇 명의 아이들이 과수원 길과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실바람처럼 잔디밭을 가로질러 창틀을 넘어 잠시 컴퓨터 자판에 지친 손을 잠시 멈추게 했다. 괜히 움츠러드는 스승의 날이었지만 은은한 화음에 선생님이란 스승이란 말은 참 좋은 것이구나 하는 작은 감동이 전해졌다. 하지만 코로나19에 점령당한 지금은 아득한 그리움이다.

 잠시 손을 놓고 창밖을 본다. 태극기는 오월의 청잣빛 하늘에 펄럭인다. 마치 아이들을 부르는 모습이다. 제일 늦게 잎을 피운 대추나무의 연한 잎이 고사리손같이 가냘프게 흔들린다. 비록 늦게 움터 꽃을 피우지만, 가을엔 달콤한 대추를 주렁주렁 매달 것이다. 늦었다고 하지만 자연의 시계에 순응하며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2020년 오월은 아이들이 없는 스승의 날이다. 세간에는 스승의 날 대신 교사의 날이 되었으면 바라는 이도 있다. 청탁금지법과 교권 침해 등 흔들리는 교단의 모습을 보며 스승의 날이 왜 있는지 원망의 목소리도 울린다. 우리 사회에서 교직은 여전히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직업으로 여겨지지만 교사들의 마음은 그 이상으로 착잡하다. 자연히 교심이반이란 말도 생기고 있다. 학교는 인류가 만든 조직체 중에서 가장 난해하고 복잡한 조직체라고 한다. 그 속에서의 일상은 전쟁과 같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적응에 뒤처졌다는 비난도 받으며 일상적인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대인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안정된 교직이라는 이면에 교사의 자존감은 세계 최하라는 어두운 이면을 아는 이들은 적다.

 아이들의 성장 공간인 학교는 어떤 곳인가? 그곳은 아이들과 함께 잘 지내며 교사 스스로 열정이 가득하고 깊은 책임감으로 학부모와 아이들로부터 신뢰감이 충만한 곳이면 그만이다. 이런 현실을 모두 담을 수 있다면 교직은 정말 살맛 나는 곳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뿐이다.

 하루해가 저물고 있다. 봄바람을 타고 생명을 이으려고 하염없이 날려온 송홧가루가 창틀에 내려앉아 누렇다. 텅 빈 교실! 등교수업을 대비해 짝지도 없게끔 간격을 벌려놓은 책걸상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교실 뒷면 환경 판은 휑한 벌판이다. 빨리 아이들이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이 오지 않는 스승의 날! 조금은 쓸쓸하지만, 아직 대면도 못 한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본다. 너희들이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며 언제나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다. 자신의 비뚤어진 마음 하나를 지적해 주는 스승, 흐트러진 자세 하나를 짚어 주어 바르게 설 수 있도록 하는 스승, 제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문제의 정곡을 찔러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오월이 푸르고 아름다운 것은 한 교실에서 지지고 볶고 힘들며 고뇌하는 현장에서 우리의 마음을 채워 줄 참 스승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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