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파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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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파도는 없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7.13 12:05
  • 호수 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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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광장 │ 이현숙(본지 칼럼니스트)
이  현  숙본지 칼럼니스트
이 현 숙
본지 칼럼니스트

파도는 찰나의 쉼도 없이 모래톱을 들고난다. 이 같은 파도의 역동성이 바다를 일렁이게 한다. 물살이 잔잔하기만 하다면 그건 바다가 아니라 호수일 것이다. 바다가 있기에 파도가 있고, 파도가 있어 바다가 존재한다.
삶의 숱한 역경들은 곧잘 파도에 비유된다. 그리고 해조음은 심신을 이완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주목할 점은 드넓은 바다에서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기를 무한 반복하지만 결코 똑같은 파도는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삶 속에 내재하는 파상적인 고난 역시 얼핏 보면 개개의 차이점이 뚜렷치 않으나 실상은 사뭇 다르다.
즉 누구나 고통의 개별성에 기초한 자기만의 고유한 십자가를 안고 살아간다. 물론 그 아픔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또한 고통을 받아들이는 감응력에는 개인 간 편차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손가락 끝의 작은 손거스러미에도 못 견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위기적 상황에서도 꽤 느긋한 사람이 있다.
살면서 달갑지 않은 인생사와 맞닥뜨리는 것은 삶의 필연한 법칙이다. 생로병사를 포함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혐오하는 사람과의 만남, 그 밖에 황망하고 억울하고 애통한 사연들을 두루 감내해야만 한다. 운명에 맞서고 고통에 저항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행여 인간의 의지로써 삶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만이거나 착각일 뿐이다. 생한 것은 멸하고, 만나면 헤어지게 되어 있다.
지난날이 정녕 기쁨과 행복으로만 가득했던가. 모든 시간이 그저 아름답고 찬란했던가. 결단코 그럴 리가 없다. 인생길이 늘 꽃길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간을 반추할 때면 아프고 시린 추억마저 으레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 고운 추억만을 간직하려는 마음의 장난이 아니고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는 세상이 모두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처럼 막막하지만은 않다. 보리밥이 별미라며 일부러 보리밥집을 찾는 이들이 있다. 정작 보릿고개를 넘을 때는 눈물바람도 없지 않았으련만 험한 세월을 돌아 나오니 그때를 웃으며 추억할 여유가 생긴 듯하다. 생의 끄트머리에서 만족한 미소를 머금은 인생의 진정한 승자가 되려면 가시밭길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레바논 출신의 칼릴 지브란이란 시인은 `마음속에서 고통을 받지 않으며 슬픔과 고독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 세상에서 오직 나 홀로 겪는 줄로만 여겼던 시련이 어쩌면 누군가는 이미 경험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행하게도 탄생과 죽음, 사랑과 미움, 만남과 헤어짐, 성공과 좌절, 이 모든 기쁨과 슬픔을 통해 인간은 내적 성장을 거듭한다.
똑같은 파도가 없듯 고통의 결도 매번 다르다. 삶이 고달파도 그럭저럭 견뎌지는 것은 한 가지 고통이 끝없이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련에 직면하고 적응하는 동안 지난날의 생채기는 차츰 옅어지고 고통에 대한 면역력은 강화된다. 개중에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잊히지 않는 아픔, 익숙해지지 않는 통증도 분명 있다. 그렇더라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견뎌 내야만 한다. 내일은 또 다시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 이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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