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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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7.17 11:26
  • 호수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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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관 호어린이시조나라 발행인
서 관 호
어린이시조나라 발행인

 위 제목은 서면 작장 출신 문영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이름이다. 지난 5월 말에 나왔다. 
문영하는 누구인가? 이웃 문신수 선생의 장녀이고, 본명 문일심의 필명이다. `부전자전`이란 말이 있다. 그녀의 선친이신 이웃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소학교를 나온 학력으로 초등교원이 되었고, 장학사를 거쳐 교장이 되었다. 

 학교에서 한글을 배운 적이 없는 그가 선생은 웬 말이며, 작가 중에서도 소설가라니? 그의 직업이 교육자이고, 그의 전문분야가 소설가인데다가, 고매한 인격까지 갈고 닦아서 후세가 추모하는 위인이 됐으니, 그의 문학비가 서상스포츠파크에 서있고, 매년 5월에 그를 추모하는 추모제가 열린다. 이런 아버지의 자식인 일심이 시인이 된 것은 선친이 작고한 한참 이후의 일이다. 글이 쓰고 싶어 얼마나 근지러웠을까? 아버지를 못 미치는 것도 싫고, 넘어서는 것도 두려운 심정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감히 문 시인은 지금 적어도 문학에 관한 한 선친을 능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등단을 기점으로는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저 홀로 쌓아온 탑돌의 숫자가 무릇 얼마일지를 미루어 헤아려진다는 말이다. 시인의 근본은 이 정도로 해두고 말머리를 바꿔 보자. 

 시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짧은 글, 긴 이야기이다. `긴 이야기를 긴 글에 담`았던 아버지의 소설은 교직은 천직(天職)인데 그것을 받들면서 글 쓰는데 시간을 도둑질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이웃 선생이었기에 밤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고 글을 썼던 아버지를 지켜봤던 자식의 가슴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긴 이야기를 짧은 글에 담`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반발심에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이 아니라 국면전환이 필요함을 느끼는 마음이 자라났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거야 그 자신도 모르는 일일 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문학의 피가 흐르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장르가 다른데 따르는 연유를 나름의 상상력으로 꿰맞춰 보려는 것이다. 부전자전의 경이로움을 다 알 것인데도 말이다. 

 룗오래된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룘 속엔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접어두고 밑줄 그은 곳이 하도 많아서 짧은 지면에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 개관을 한마디로 말하면 제1집 룗청동 거울룘과 두 시집이 모두 `거울` 시리즈라는 점과 제2집에는 짧은 시가 없다는 점이다. 표제가 `거울`인 것은 내용이 과거에 바탕을 두고 있고, 미래를 지향한다는 말이다. 역사책 이름에 거울 감(鑑)자가 들어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짧은 시가 없다는 것은 짧은 글을 쓰겠다는 욕심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에 더 욕심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동향인의 한 사람으로서의 나의 욕심은 누구나가 암기할 만한 짧은 시가 몇 편 있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암송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 글이 본격 평론이기보다는 우리 고장 출신의 작가를 소개하는 정도의 글이기 때문에 그 작품 1편만 함께 맛보기로 하겠다. 
 
마당가 붓꽃이 다발 다발 피는데
청정한 기운으로 오신다
 
잘 있느냐
욱신거리는 이 다리와 손가락은 봄이 오면
풀릴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
 
전화선을 타고 날아오던 꼿꼿한 목소리
손수 떠놓고 가신 마지막 정화수
새벽을 탑으로 쌓아 올리던 지극한 정성이
은하에 닿았다가
이 밤 포슬포슬 별빛으로 내리는가
 
주발 뚜껑 차마 열어보지 못하고 귀 기울인다
 
쩌렁쩌렁 날아오는 피안의 소리

소를 몰고 가다 소에게 끌려 죽을 판이 되었을 땐 고삐를 놓아라
소는 제풀에 꺾여 다시 돌아올 것이라
 
 - `세 번째 기일` 전문
 
 이 시뿐만 아니라 문 시인의 시집을 읽는 순간 순간의 느낌은 내가 지금 철학책을 읽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래야 좋은 시일 것은 자명하지만 말이다. 철학이 학문의 바탕이듯이. 아버지 제삿날에 가지는 자식의 감회는 누구나 남다를 것이지만, 특히 시를 읽는 독자의 공감을 생각할 때 독자의 아버지와 궤를 같이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진 남다름, 마지막 연에서 마치 금언과도 같은 한 마디를 제시함으로써 인생무상, 인간윤회, 자기성찰 등 피안의 소리를 듣는다. 이것은 아버지가 남긴 좌우명이나 유언과도 같은 말이거니와 이웃 선생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3백 수십 편의 룗세상살이 토막말룘의 한 편 같은 느낌이 들어서 부전자전의 재능을 다시 곱씹게 한다. 

 등단한 지 불과 수년 만에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문영하 시인, 그녀의 독특하고도 뛰어난 문장을 내외군민이 모두 읽어서 문학의 향기를 향유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쪽수가 많지 않은 지역신문의 지면을 많이 차지하였다. 문 시인의 건필을 기원하면서 문화도시 남해문화의 꽃도 활짝 피기를 함께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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