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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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아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8.06 14:58
  • 호수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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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1990년 개봉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장군의 아들]은 우리를 열광케 했고, 영화의 주무대였던 종로 거리를 건달들의 성지로 인식시켰다. 

 어느 날 절친과 어울린 술자리에서 종로 얘기를 하다 우리 중 아무도 서울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술김에 서울 종로에 가보기로 약속을 했고 며칠 후 친구 둘과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서울은 촌놈들에게 위압감을 주었지만 우리는 촌티를 씻어내려고 이태원을 찾아 이발부터 했다.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고 이태원에 갈 때는 몰랐는데 이발 후 버스를 타면서 우리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다. 버스에서 나누는 우리의 사투리에 주변 분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렸고 이발로 감추려 했던 촌티는 결국 입을 열 때마다 고스란히 노출되고 말았다. 

 어렵게 찾은 종로에서 점심을 먹으러 간 햄버거 전문점에서 서로가 주문하기를 꺼려 결국 가위바위보로 주문자를 결정했고 울산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친구가 주문대에서 아가씨에게 주문을 했다. 하지만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한 아가씨의 다시 주문해달라는 얘기에 친구는 얼굴이 붉어져 더욱 거친 사투리를 구사했고 주문에 실패할 것을 예감한 나와 친구는 슬그머니 자리를 뜨고야 말았다. 

 그 후 서울을 여행하는 이틀을 길거리 분식집에서 튀김과 어묵 김밥 등을 먼저 먹고 "얼만교?"란 말만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때 우리는 서울사람들이 우리의 사투리를 알아듣고도 차별하려 일부러 이해하지 못하는 척한다며 서울사람을 흠잡았다. 
 10년 후 부산영화 룗친구룘의 큰 성공 후 이제는 전국 어디에서 웬만한 사투리를 사용해도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분명 언어의 장벽은 허물었건만 소득 차이와 세대 간, 성별과 이념의 소통은 오히려 더욱 막혀가고 있다고 느끼는 건 혼자만의 기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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