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우 형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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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우 형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9.24 12:24
  • 호수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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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자 기 고
류 동 길 숭실대 명예교수
류 동 길
숭실대 명예교수

 이름만 불러도 정답던 곽영우 형이 먼 길 떠났다. 나이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던 그가 갑자기 떠났으니 충격 자체다. 늘 함께 했던 친구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이고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친구들은 물론 선·후배와 고향의 대소사를 챙겨왔다. 고향소식을 알려면 그에게 묻는 게 빠른 길이었다. 그는 늘 따뜻하고 성실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1951년 9월 남해중학교 교정이었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70년, 자주 어울렸고 만나지 못할 때는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그래서 늘 마음 속에 그가 있었다. 그 세월 동안 서로가 주고받은 이야기는 산처럼 쌓였고 나눈 정은 바다보다 넓었다. 늘 함께 지냈기에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가 떠나버렸으니 이제는 그에게 진 빚을 갚을 길이 없다. 

故 곽영우 향우.
故 곽영우 향우.

 그는 운동을 좋아했다. 나이 들어서도 테니스를 계속하기에 테니스 그만하고 산에 다니자고 권하기도 했지만 그 말을 듣지 않고 테니스를 즐기다가 떠나고 말았다. 이제 와서 더 강하게 권하지 못한 걸 후회한들 소용이 없다. 

 그가 떠난 빈자리는 너무 크다. 참으로 허전하다. 떠난 친구의 명복을 비는 것 이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는 무력함이 안타깝고 서러울 뿐이다. 삶이 무엇인가를 알지 않고 죽음을 말할 수는 없다. 죽음을 모르면서 삶을 말하기는 더욱 그렇다. 삶은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라고도 하고 인생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고도 한다. 삶과 죽음이 그렇다고 해도 아무 말도 없이 떠난 그를 용서하기 싫다. 그러나 그의 용서를 받을 수가 없으니 어쩌는가.  

 영우 형, 어디로 간 거요. 당신의 영전에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한 당신은 참으로 나쁜 사람이오. 그렇게 야속할 수가 있는 거요. 이별은 아픔이라고 하지만 당신이 이런 아픔을 남기고 떠나다니.
 영우 형, 당신은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자 두 아들의 자상한 아버지였고 우리의 존경하는 친구였습니다. 이제는 당신을 영영 다시는 볼 수 없으니 이런 슬픔과 애통함이 어디 있단 말이오. 영우 형, 마지막으로 불러 봅니다. 친구야 잘 가라. 사랑하는 친구 영우야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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