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재건축 물꼬 튼 `이환성 향우`
상태바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재건축 물꼬 튼 `이환성 향우`
  • 하혜경 서울주재기자 기자
  • 승인 2020.10.08 11:53
  • 호수 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놀이터부지 소유권 이전소송 승소하며 이웃들에게 선한 영향력
관련법 정비 전 분양된 아파트 공유부지 현 소유자 권리인정 받아내
단양관광호텔 회장 이환성 향우
단양관광호텔 회장 이환성 향우

 남해인의 끈기와 집념은 개인적인 삶의 성공뿐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놀이터 공유부지 소유권 이전소송에서 승소한 이환성 향우의 사례가 이런 경우다. 단지 내 `놀이터 공유지분` 문제로 지지부진했던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재건축 사업은 이 향우가 조합 고문단장을 맡아 소유권이전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낸 뒤 가속도를 내고 있다.

 재경남해군향우회 감사를 역임하는 등 고향을 위해서도 늘 발 벗고 앞장서 왔던 단양관광호텔 회장 이환성 향우의 특별한 `소송기(訴訟記)`를 들어보았다. 
 
 신혼생활 시작한 동부이촌동은 제2의 고향
 한강맨션은 이촌동 한강변 노른자위에 자리잡은 국내 최초의 중산층 아파트로 1971년 입주를 시작해 올해로 50년이 됐다. 1977년에 결혼한 이환성 향우는 이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1960년 상경한 후 결혼하면서부터 이 동네에서 45년째 살고 있다. 나에게 동부이촌동은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정이 든 동네다"라는 이환성 향우.

 80년대 강남이 개발되기 전까지 대표적인 부촌이 바로 동부이촌동이었다. "1983년 아웅산 테러가 났을 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장관이 2명이나 돌아가셨다. 그 정도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많이 살던 아파트였다."

 긴 세월동안 동부이촌동은 많이 변했다. 재건축 바람이 불면서 양 옆 아파트 단지는 초고층 아파트로 탈바꿈했지만 정작 알짜입지인 한강맨션아파트 재건축은 지지부진했다.

 가장 큰 원인은 놀이터와 관리동 공유부지 문제였다. 아파트 소유권과 관련한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한강맨션이 공급된 이후인 1984년 제정됐다. 이 때문에 수차례 주인이 바뀌는 동안 아파트 지분만 거래되고 공유부지(총 4277.4㎡)의 법적 소유권은 최초분양자에게 남아 있었다.

법 제도 미비로 발생 판단
`국민권익위` 도움 요청

 그는 "재건축 사업에는 워낙 이권과 부정 모략 등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예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일로 지지부진한 걸 보고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고문단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나서게 됐다"고 말한다.

 조합 고문단장을 맡으며 아내와 공동명의로 되어있던 아파트 명의를 아내에게로 넘기고 이 일을 시작했다. 혹시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소송에 드는 경비도 모두 자비로 충당했다.

 "소유권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당시 법제도가 미비했기 때문이다. 아는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국민권익위원회`라는 제도를 이용해 문제를 풀어내야겠다고 판단해 권익위원회에 이 사건을 의뢰했다. 법과 제도를 먼저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대통령 경호실 차장을 지낸 고(故) 신동관 전 의원을 보필하며 배운 것이다.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노력이 들었다. 원분양자를 파악하고 소송을 진행하는데 근 400여 일이 걸렸다.
 
현 소유자 승소결정
조합원당 1억2천여만원 이익

 추석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난달 드디어 승소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소유권이 이전된 이후 원고가 공유지분을 평온하게 점유해왔다"며 "20년의 취득시효가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판시하고 현 소유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이 갖는 의미는 크다. 일단 한강맨션 아파트 재개발 조합원 700여 명은 각 1.8평의 소유지분을 되찾게 됐다. 금액으로 따지면 한 세대 당 1억2천여만원이다. 현재 130명이 소유권 반환소송을 진행 중이다. 덕분에 막혔던 재건축 사업도 물꼬가 트였다.

 "승소판결을 받고 아버지(故 이청옥) 생각이 많이 났죠. 남해공립농업중학교 교감을 하셨던 아버지는 1950년 추석 전날 북으로 납치되셨다가 지리산 입구에서 돌아가셨다. 평소 제자들을 위해 고향을 위해 사셨던 분이라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일을 했으니 아버지도 뿌듯해하실 것 같다"는 이환성 향우. 그는 지난 아버지 기일 영정 사진을 보며 "아버지 내 잘했지예. 그런데 참 힘들었십니다"라며 회환에 잠기기도 했다.
 주변에 그를 아는 사람들은 소식을 듣고 "역시 이환성, 역시 남해사람"이라며 엄지를 추켜세우지만 그는 "이제는 그만하고 물러날 때"라며 오히려 몸을 낮춘다. 그는 "몇 년 후 한강변에서 멋지게 변신한 한강맨션아파트를 본다면 `지지부진했던 재건축 사업의 물꼬를 튼 사람이 `남해사람`이었다지`라고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