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은 꼴찌도 행복하게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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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은 꼴찌도 행복하게 하는 것인가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0.08 11:56
  • 호수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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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해 찬 남해군선거관리위원회 선거주무관
정 해 찬
남해군선거관리위원회
선거주무관

 언제부터인가 주요한 사회 이슈 대부분이 `공정`이라는 가치를 두고 벌이는 갑론을박이 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지난 1년 우리 사회를 관통한 많은 사건 중에 공정과 무관한 사건이 몇이나 되는지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가끔은 이러다가 `공정`이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정의의 최대치가 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들 때도 있습니다. 공정은 오늘날의 시대정신입니다.

 물론 공정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특히 차별받지 않고 정당한 기회를 부여받는다는 것은 정의로운 사회의 기본적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지 그것이 전부인 사회라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어릴 적 운동회에서 1, 2, 3등까지만 공책을 상으로 주고 나머지 친구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야 운동회 날이면 몇 권이 되었든 공책을 쥐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만, 매번 빈손으로 돌아가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달리기는 공정했고 그 결과는 정당한 것이지만 `매번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갔을 그 친구에게도 운동회는 과연 행복한 날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제가 조금 더 어른스러웠더라면 그 공책을 친구와 나눌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드는 아쉬움은 어릴 적 운동회의 그것보다 더합니다. 삶은 달리기가 아니며 행복은 1등에게 주어지는 공책이 아님에도 우리의 삶은 경쟁의 압박과 도처에 놓인 우승열패의 굴레로 힘겹습니다. 입시, 취업 등 어느 것 하나 달리기가 아닌 게 없습니다. 친구와 함께하는 삶이 아닌 친구를 뒤로하는 삶입니다.

 공정함의 결과로 꼴찌가 불행해지는 사회라면 우리는 당연히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에 대한 덫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무원 시험에 군 가산점을 주는 게 공정한 것이냐`부터 `경력직을 신규채용에서 우대하는 게 공정한 것이냐`까지 지루한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직업이 선거관리위원회의 공무원인 탓에 저는 우리의 소선거구제를 생각합니다. 최다득표자 1인만이 당선이라는 열매를 가져가는 전형적인 승자독식의 구조입니다. 같은 이치이지만 공직선거법은 그래서 그 어떤 법보다 `공정`에 관하여 엄혹합니다. 후보자는 동네친구에게 우의로 밥 한 끼를 사더라도 `매수의 혐의`를 추궁당해야 하는 날카롭기 그지없는 법입니다. 그리하여 선거 때가 되면 각 후보 상호 간에는 상대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게 아니냐는 의혹성 신고가 난무하며, 선거가 끝나고 나면 패자는 선거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불복 선언을 이어가는 일이 빈번합니다.

 때문에 `우리사회는 공정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앞서 `꼴찌를 행복하게 하는 공정은 무엇인가`를 더 본질적인 물음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 발이었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이른바 위성정당으로 좌초한 사실은 그래서 더 아쉽게 느껴집니다. 패자에게도 패자만의 인간적인 몫이 주어질 때 공정의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좀더 쉬워지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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