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 남단 가천에 가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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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남단 가천에 가면(4)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2.21 12:25
  • 호수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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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68 │ 碧松 감충효
碧松 감충효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충효시인 / 칼럼니스트

저 파도에 밀리다간
꼭대기로 갈 수밖에

차라리 여기에다
성벽을 쌓자꾸나

우리가
저 여울 딛고
성 밑돌을  깔자꾸나

흙 알 하나 못 빠지게
돌 귀퉁이 다지거라

흙은 살, 돌은 뼈라
네 몸이듯 엮어라

수십 년
할부지 호령에
또 한 층이 매달렸다.

백팔계단 걸터앉은
저게 논이랍디까?

말 마쇼 삿갓 크기
논배미도 있다오

쌀 한 톨
마늘 한 톨이
이곳에선 보석이오.


- 詩作-노트-
여수반도 외해 쪽에서 가천마을로 밀려오는 파도는 잔잔한 강진바다와는 달리 상당히 거칩니다. 깎아지른 듯 절벽에 무서운 기세로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 위에 뿌리를 내린 석벽을 밑돌로 하여 성벽처럼 쌓아 올리기 시작한 다랑이논이 백팔계단을 이루기까지는 눈물과 땀과 억척같은 개척정신이 아니고서는 감히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가파른 절벽 같은 곳에 논배미를 쌓아 올려가다 보니 지형상 아주 작은 땅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도 어김없이 작은 물길을 내고 벼를 심었습니다. 비오는 날 일하다가 비가 그쳐 삿갓을 내려놓았는데 집에 올 때 삿갓을 들치니 그 아래 조그만 논배미가 있었다는 우스개 같은 이야기도 전하고 실제로 아주 작은 논배미를 이 지방 사람들은 삿갓배미라고 부릅니다.
가천 앞바다를 바라보다가 오래 전 떠들썩했던 거북선이야기가 뇌리를 스칩니다.
역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평산에 조선 성종 21년(1490) 9월에 진보를 구축하기 위하여 평산포 진성을 수축하였다. 고려시대 우수사를 설치하였던 이곳을 조선조에 만호진으로 대처하였고 거북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 능노군 145명, 사부 28명, 화포수 10명, 포수 34명이 주둔하였다.(남해군지 상권, p. 509, 2010년 발행)】
가천과 평산포는 지척간이고 평산포에 주둔한 거북선은 임진왜란 당시 수시로 인근 전라좌수영의 거북선과 같이 이 가천 앞바다에서 조우했을 것입니다.
과거 1984년부터 1994년까지 정부가 추진한 거북선 찾기 사업이 진행된 바 있었으나 가짜 총통사건을 비롯해서 현재의 수준과는 비교되지 않는 탐사장비의 미비로 중단된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 후 2008년께 경상남도는 거제 칠천도 일대를 중심으로 1차 탐사작업을 시작했지만 남해의 가천 앞바다까지 탐사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는 것 같습니다. 현대 최첨단 장비로 몇천 년 전의 심해유물을 건져 내는 요즘 세상입니다. 가천의 땅속 미륵불을 바깥으로 모셔온 영험을 지닌 가천마을입니다. 충무공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거북선이 언젠가는 가천 앞바다에서 솟아오를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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